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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연가 - 엄마 카드

주시평

입력 : 2008.12.01 09:00|수정 : 2008.12.01 09:02


    

회사들이 몰려있는 도심과 달리 100여개의 소극장들이 밀집해 있는 대학로에는 술집과 식당들이 많다. 저녁 8시부터 공연을 시작하는 공연장들은 밤 10시가 넘어야 공연이 끝나다보니 자연 공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퇴근은 그 보다 훨씬 늦을 수밖에 없다. 또 술집들이야 원래 늦게 끝나는 곳이다 보니 대학로의 새로운 하루는 이런 저런 이유로 다른 지역보다 늦게 시작한다. 술집들은 대부분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극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적어도 10시는 돼야 출근을 한다. 그나마 그것도 최근 1,2년 사이에 변화된 대학로 출근 모습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취재 때문에 오전에 공연 관계자에게 전화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설사 통화가 된다 하더라도 자료가 필요해서 부탁을 하거나 연출가나 배우 인터뷰를 요청해도 일이 되는 건 점심시간이 지난 뒤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엔 아침에 전화하면 그래도 통화는 된다. 공연 일을 하는 직원들이 올빼미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대개 저녁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퇴근을 하다 보니 출근 시간이 늦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거의 모든 극단의 직원들이 늦어도 10시 까지는 출근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세상이 바뀐 것이다. 예전과 달리 홍보 마케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예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행정업무들이 하나 둘씩 틀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단이 클수록 직원들의 생활은 점점 일반 회사원들을 닮아가고 있다. 오전에 출근해서 하루를 일과를 체크하는 회의를 비롯해 홍보 마케팅 회의도 하고, 또 오후부터는 티켓 관리와 단체 관람 등등의 티켓 세일즈, 그리고 각종 매체와의 홍보 마케팅까지 한다. 그러나 보면 어느덧 공연 시간, 특히 공연을 올릴 즈음에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라고 한다. 옛날처럼 출근이 늦었던 호시절도 가고 갈수록 팍팍해지는 건 공연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더 팍팍한 것은 월급이 적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적다는 것이다. 공연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공연 일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5년 전 내가 문화부에 처음 발령을 받고 첫 문화부 기자로서 일을 시작할 때 일이다. 주로 공연 홍보팀 직원들과 만날 일이 많은데, 하루는 어느 극단의 홍보팀장과 점심을 하게 됐다. 나는 홍보팀장과 함께 회사 근처의 식당가로 갔다.

"기자님 뭐 드실래요? 뭐 좋아하세요?"
"음 김치찌개나 먹을까? 뭐 좋아해요?"
"김치찌개 말고 맛있는 것 드세요"

아, 난 나보다 어렸던 그 홍보팀장의 그 다음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홍보팀장의 다음 한마디는 그 뒤 나에게 작은 원칙 하나를 갖게 했다.

"기자님, 정말 맛있는 것 드세요. 제가 오늘 우리 엄마 카드를 가지고 나왔거든요"

대학을 졸업하고 공연계에 들어온 지 5,6년 정도 됐고, 팀장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일반 회사처럼 업무추진비나 판공비 카드 같은 것은 없었다고 했다. 기자들과 전화통화를 상당히 많이 하는데도 전화비는 개인이 부담했고 어쩌다 아주 늦은 경우에만 택시 영수증을 회사에서 처리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 한달 월급은 얼마나 되요?"
"음 다 똑같죠. 그냥 남들 받는 만큼 받아요"
"그게 얼마에요?"
"백만원 좀 넘어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극단에 왔을 때는 백만원이 훨씬 안됐다고 했다. 백만원이 넘는다는 말을 나름 웃으면서 했던 이유를 알만했다. 당시 그 홍보팀장이 소속된 극단은 상당히 굵직한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 공연계 직원들과 만나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가급적 내가 돈을 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됐다.

몇 년 뒤 나는 우연히 그 홍보팀장의 동생을 만났다. 배우지망생이었던 그녀의 동생 역시 언니를 따라서 공연계에서 홍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역시 홍보 팀장의 동생과 점심을 하게 됐다. 난 자리에 앉자 마자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혹시 엄마 카드 가지고 왔어요?"
"네, 기자님, 우리 엄마 카드 가지고 왔어요"

그녀는 신기한 듯 나를 보고 웃었다. 나 역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계에서 일하는 두 딸을 둔 그녀의 어머니는 딸들에게 카드를 주며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궁금했다. 혹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얘 너네 회사는 엄마 카드 없으면 어떡하냐?"
 
대학로의 삼성격인 공연단체가 있다. 인턴사원으로 처음 입사하면 대략 70만원 정도 받는다. 그러다 인턴을 떼고 한 5년차까지는 여전히 100만원에서 150만원정도 받고 10년정도 돼야 200만원대의 월급을 받는다. 휴대폰 전화비는 여전히 직원 개인이 내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지만 택시 영수증을 청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홍보 판공비 명목으로 기자들이나 언론매체 사람들과 만날 때 쓰는 ‘회사 카드’는 있다고 한다. 대학로의 삼성이라는 불리는 이런 공연단체의 경우가 이정도면 다른 군소 극단의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 대학로에서 공연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자가 드물다. 남자가 있어도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결혼도 하고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의무를 지닌 남자로서 경제적 비전을 찾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나는 그래서 공연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정말 오래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공연을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고, 아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는 엄마 카드를 빌리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