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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논쟁 해외서도 '현재진행형'

입력 : 2008.11.28 16:06


안락사 허용 여부를 놓고 해외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진행 중이다. 안락사 허용에 관한 기준이나 범위는 국가의 종교,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다르다.

28일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적극적인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북유럽이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소극적 안락사, 즉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되거나 사실상 묵인되고 있다. 반면 안락사를 용인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으로 인해 여전히 금지하고 있는 국가도 많다.

◇허용범위 확대해 가는 미국 = 근본주의 기독교인이 많아 낙태, 사형제 등과 함께 안락사 논란도 활발하고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례도 많다.

미국에서는 1975년 뉴저지주에서 일어난 퀸란(Karen Ann Quinlan) 사건 이후 안락사가 사회적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당시 21세이던 퀸란은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술과 약물에 중독돼 호흡정지가 일어난 후 혼수상태에 빠졌고 지속적 식물상태를 유지하게 됐다. 퀸란의 아버지는 생명유지장치를 뗄 권한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뉴저지주 대법원은 이듬해 3월 "다른 의사로부터 현재 혼수상태에서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생명유지장치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입원한 병원의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장치를 제거해도 된다"며 아버지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을 존중한 새로운 판결로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미국 법원도 적극적인 안락사를 주장하는 '죽음의 의사' 케보키언에 대해서는 중형을 선고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케보키언 박사는 1998년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유크에게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입, 사망하게 한 뒤 이 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CBS 방송의 '60분'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했다가 2급 살인죄로 최소 10년 최대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케보키언은 당시까지 매년 10여명씩 불치병 환자 100여명의 자살을 도왔다. 그는 자살방조죄로 네 번이나 기소되고도 풀려나 '죽음의 의사'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1998년 직접 의사 자신이 주사를 놓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장면을 방송하고 "나를 잡아넣으려면 잡아넣어라" 고 사법기관에 공개도전을 했다가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 받은 것.

캘리포니아주(州)에서는 1988년과 1992년 안락사 법제화를 위한 주민투표가 시행되었으나 부결됐으며 워싱턴주에서는 1991년 '죽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법안을 주민투표에 붙였으나 역시 부결됐다.

오리건주는 주민투표를 거쳐 말기환자가 의사에게 극약을 처방받아 스스로 복용해 자살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尊嚴死)법을 주민투표를 거쳐 1997년 10월부터 시행했고 시행 이듬해에만 15명의 말기환자들이 이 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극약을 삼키고 사망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이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연방 하원은 1999년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 을 표방하며 극약을 자살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고통경감법'안을 통과시켜 이 법을 무력화시켰다.

반면 2005년 15년째 식물인간 상태였던 테리 시아보의 경우 급식튜브를 제거해달라는 남편의 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시아보는 음식공급을 중단한 지 13일만에 숨졌다. 즉 호흡기가 없이 음식물만 공급하면 사망하지 않는 상태의 환자에 대해서도 안락사를 허용, 점차 안락사를 인정하는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셈이다.

◇안락사 희망자들의 '종착지' 네덜란드 = 네덜란드는 가장 적극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다. 과거 판례를 통해 엄격한 요건하에 존엄사나 안락사를 허용하던 네덜란드는 2000년 하원이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서는 ▲대상자가 불치의 환자일 것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할 것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안락사에 동의할 것 등의 전제조건을 만족할 경우 안락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1996년 이후 이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2천565건의 안락사가 있었던 것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으며 안락사의 90%는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것으로 보고됐다. 영국 등 인근 국가의 말기환자들이 안락사를 위해 네덜란드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법이지만 사실상 묵인하는 영국, 일본 = 영국은 19세기 말부터 안락사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입법 시도도 있었으나 모두 불발됐다. 지금도 법적으로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1993년 3년 이상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자에게 영양공급장치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이 내려진 후 제한적으로 존엄사를 인정하는 선고가 나오고 있다. 즉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비슷하다. 일본은 1995년 요코하마(橫濱) 법원의 판례에 따라 소극적 안락사에 대하여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코하마법원은 당시 ▲환자의 참기 힘든 고통 ▲죽음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 ▲고통제거수단의 유무 등의 기준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역사적 경험 떠올리며 반대하는 독일 = 독일은 나치 시절 장애인·소수인종에 대한 적극적 안락사가 악용된 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안락사가 허용되면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강하다. 독일 정부와 사회는 '아픈' 역사에 대한 반성과 남용 우려로 인해 안락사 허용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호주 연방은 1996년 안락사를 법제화했다가 6개월만에 이 법안을 폐기했다. 다만 호주 8개주 가운데 3개 주가 '생명연장장치 제거'를 의료행위로 허용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