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꾸린 경제팀 인사들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에 대처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부 '권력 갈등' 양상을 보일 조짐이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전망해 관심을 끌고 있다.
27일 뉴스위크에 따르면 차기 재무장관에 내정된 티머시 가이트너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에 내정된 로런스 서머스는 테니스를 함께 치는 가까운 친구 사이지만 성격과 기질이 판이해 두 인사가 조화롭게 경제 위기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머스는 지적 능력이 탁월하지만 거만하다고 할 정도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인 반면 가이트너는 자신의 공적을 남에게 양보할 정도로 몸을 낮출 줄 안다는 평을 들어 왔다.
1990년대 말 서머스와 가이트너는 로버트 루빈 전재무장관 밑에서 일을 배운 추종자로 두 인사 모두 "당시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탁월한 관리 능력 등 많은 것을 로빈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루빈은 1997년 12월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당시 카리브해 휴양지에서 주요 은행장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 대한 만기 채권을 연장해 주는 게 좋겠다"고 독려하며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관리 능력을 발휘했고 서머스와 가이트너는 이를 옆에서 보고 배웠다.
서머스와 가이트너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 상황에 처한 미국을 일으켜 세우려는 오바마 당선인을 보좌하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게 됐고 최근 오바마 당선인을 도와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을 서로 협의해 마련하는 등 매우 순조롭게 출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두 사람간의 협조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미 워싱턴 정가 고위층의 권력 갈등 내지 영역 다툼은 위기 관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서머스는 당초 재무장관 자리를 다시 욕심냈다가 한때 '부하'로 데리고 있었던 가이트너를 위해 스스로 양보했지만 재무부 소관 사항은 물론이고 차기 행정부의 경제 정책 전반을 장악하는 데 조금도 꺼리낌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는 지난 24일 경제팀 인선 기자회견을 통해 서머스를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경제 전문가 중 한명"이라고 치켜세우며 "나는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서머스의 조언에 크게 의지하려 한다"고 공표했다.
오바마의 얘기대로라면 서머스는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역할을 맡고 가이트너는 정책을 시행하는 '선발대장' 일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 당장 금융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단계에선 별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금융 위기를 넘긴뒤 경기부양책의 규모나 사용처, 장기적인 재정 적자 해결,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개혁 등 오바마 행정부에게 맡겨진 굵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뉴욕연방준비은행 한 관리는 "가이트너가 재무장관이 된뒤 '나는 항상 서머스의 부하 직원으로 넘버 2 노릇만 해야 되느냐'고 자각하기 시작하게 되면 내분의 위험이 닥칠 수 있다"며 "가이트너는 재정 정책에 대한 안목과 능력을 충분히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재정 분야에 정통한 서머스가 가이트너의 위상을 조금씩 약화시키려 할 것이고 월스트리트 수장들은 가이트너가 아닌 서머스에게만 전화를 걸 것이다. 그 시점이 바로 문제이며 권력 갈등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1월 임기가 만료될 예정인 밴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거취 문제도 관심사 중 하나다. 서머스가 임기 만료 전에 버냉키를 밀어내고 의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더이상 비밀스런 일이 아니다.
최근 오바마 인수팀 내부에서 버냉키가 내년 중 서머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물러나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버냉키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서머스와 버냉키는 오랜 학문적 동료 관계를 맺어온 사이고 버냉키는 가이트너와 비슷하게 '에고이스트'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지만 서머스가 주도하려는 정책 방향을 놓고 충돌을 빚게 되면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오바마가 지난 26일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를 신설,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낸 폴 볼커를 ERAB 의장에,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인 오스탄 굴스비를 사무총장에 지명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ERAB의 신설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국가경제위원회에 버금가는 새로운 '경제 권력' 기구의 탄생을 뜻하는 것이고 고집 센 '파이터'로 소문난 볼커와 독선적인 서머스간의 대결 여부가 오바마 경제팀의 항로에 큰 변수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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