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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② 선생님까지 이념의 이전투구에…

우상욱

입력 : 2008.11.26 16:38|수정 : 2008.11.27 10:49


한국교원총연합회(이하 교총)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교육세 폐지 문제를 비롯해 각종 교육현안 전반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습니다만, 언론의 관심은 '역사 교과서 문제'에 쏠렸습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해오지 않던 교총이 태도를 확 바꿨기 때문입니다. 교총의 관련 발표 내용을 요약하자면, 현재 근현대사 교과서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내용이 많고 따라서 이번 기회에 그런 교과서는 퇴출해야 하며 나아가 정부는 교과서 검인정 제도를 손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가장 큰 의문은 이렇게 문제가 많은 역사 교과서에 대해 교총은 왜 지난 정권에는 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점입니다. 국가 정체성을 헤치는 교과서가 말이 됩니까? 당장 없애야죠. 그렇다면 근현대사 교과서가 나오자마자 계속, 줄기차게 저항 운동을 해야했지 않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전 정권까지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토론회 한번 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 배경에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현대사 특강'을 계획하고 교사가 아닌 인사들에게 수업을 하도록 한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는지 교총은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에게 교단을 내주는데 대해 항상,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교총이라면 분명 문제제기를 할 듯 한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점이 당혹스럽습니다."

현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심각하게 편향돼있다는 결론을 낸 과정도 의문점입니다. 이원희 교총 회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소속 교사들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정체성 훼손 등의 문제가 있다'는 응답이 60%를 훨씬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왜 기자회견문에 그런 내용이 없는지, 하다못해 첨부자료로라도 소개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역사 수업을 맡고 계시는 역사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할 듯 한데 이 부분 조사는 왜 하지 않았는 지도 납득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이 이른바 좌편향 역사 교과서를 교육 현장에서 배제하기 위해 행하는 각종 조치들에 대해 교총이 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지 의아스럽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각급 학교 교장과 학교운영위원들을 불러 직접 특정 교과서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히 이른바 '현대사 특강'을 계획하고 교사가 아닌 인사들에게 수업을 하도록 한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는지 교총은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에게 교단을 내주는데 대해 항상,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교총이라면 분명 문제제기를 할 듯 한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점이 당혹스럽습니다.

어제 교총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든 생각은 '교총이 현 시국에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 지 고민이 많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교육 정책에 있어 기본적으로 전교조의 반대 입장에서 의견을 이끌어왔지만 언젠가부터 전교조에 주도권을 내주고 밀리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같은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대한교조가 출범하면서 이제 근거지에서조차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다보니 '보수'라는 선명성을 더욱 강조해 지지 기반을 강고히 하고 전교조에 밀리고 있는 소위 이슈 파이팅에서도 힘을 내야 한다는 이중고에 직면했습니다. 어제 기자회견은 그런 교총의 속내가 드러났다는 분석입니다.

교총의 '보수 선명성 강조' 배경...
전교조에  밀린 듯한 주도권 되찾고, 대한교조와는 보수 근거지에서 경쟁
 

하지만 교총의 이런 움직임은 평면에 있어 영역 확보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교총 특유의 고도를 잃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교총은 다른 교원노조와 비교해 좀더 교육 본연의 문제에 집중하고 교육현장에서의 갈등보다는 화합과 상생을 우선하는 이미지를 고수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줘왔습니다. 때로는 선생님 특유의 점잖은 모습을 고수하느라 교원노조들에 비해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어제의 발언과 태도는 이런 본연의 고도를 버리고 땅에 내려와 교원노조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읽혀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교총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교원노조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은 탈정치화, 또는 정치적 중립 유지 아닐까요?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어떤 사상과 관점을 가진 국민이라도 교총이 하는 얘기는 일단 믿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전문직 단체로서 교총이 추구해야할 길이 아닐까요?

그저 유신 시대에 배운 역사적 지식과 관점을 가지고 현재 역사 교과서가 빨갛다고 몰아부치기 보다는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역사 교육의 방법론이 무엇인지, 교육 선진국의 사례들은 어떤지, 역사학자나 역사 교사들에게 폭넓게 의견을 구하고 좀더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교총다운 모습 아닐까 아쉬워해봅니다. 그랬다면 교과서의 검인정 제도를 폐지하고 다시 국정으로 돌아가자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발언은 하지 않았을텐데요.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