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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연가 - 공간의 의미

주시평

입력 : 2008.11.26 15:18




1988년. 그 때 대한민국은 올림픽으로 난리였다. 복싱에서 금메달을 휩쓸었고 양궁은 그 때부터 우리의 메달밭이 되었다. 메달을 딴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는 그 난리법석을 뒤로 한 채 나무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고3이었다. 무더운 여름 햇살이 시멘트로 된 교실 건물을 달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운동장 한쪽에서는 새로운 시멘트 건물이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다. 당시 학교는 노후 된 본관 건물을 허물 예정으로 신관 건물을 한창 짓고 있었다. 물론 고3이었던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내가 들어가서 공부할 것도 아닌, 나와는 아무 상관없던 그 건물은 내가 졸업할 즈음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췄다. 깨끗하고 시설 좋은 건물에서 공부할 후배들을 생각하니 잠깐 부럽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정말 잠깐 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뒤, 나는 우연히 내가 고등학교 3년을 보냈던 그곳이 완전히 새롭게 변한 모습을 보게 됐다. 아니 완전히 다르게 변해 있었다. 물론 알고는 있었다. 본관이 허물어지고 신관만 있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눈을 보고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확 달랐다. 뜨거웠던 여름날, 체육시간이 끝난 뒤 웃통을 벗고 시원하게 얼굴과 씻고 머리도 감고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곤 했던 수돗가도 없어졌다. 한 겨울에 바람이라도 불면 마치 연기 나는 굴뚝처럼 담배 연기가 쏟아져 나오던 야외 변소도 없다. 운동장 건너편에는 번듯한 새 건물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신관 건물을 보고서 나는 나의 학창 시절을 단 한 장도 떠올릴 수 없었다. 나와 그 새 건물과는 아무런 소통의 연결 고리가 없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전부 없어진 옛 건물에 있었다. 건물이 없어진 그곳에서 나는 3학년 교실의 복도가 떠올랐고, 교실의 모습이 펼쳐졌고, 내 자리가 보였다. 그리고, 내 짝꿍이 그리웠다.
  
내가 다시 모교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이 흐른 뒤였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에서 옛 동창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아예 없어지고 광주에 새로 생긴 개발지역으로 완전히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남녀공학이 됐다고 했다. 뭐!, 뭐! 나는 두 번, 놀라움을 표현하는 추임새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진짜~, 진짜~. 나는 재차 확인의 추임새를 다시 넣었다. 허탈했다고 할까, 내가 졸업한 학교에 대해 뭐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는 나였지만 뭐라고 꼭 집을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3년 동안 다녔던 학교가 사라졌고, 그 3년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마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건물은 없어졌어도 운동장은 있었는데, 그리고 운동장 저쪽의 소나무 숲도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다. 학교가 떠난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했던 것 같다. 기억이 분명치 않다. 아마 나의 뇌는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난 이후 뭐가 생겼다는 말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고 또 들었다 치더라도 기억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나의 모교는 광주 무등 경기장 바로 근처에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 경기가 있던 여름밤이면 야구장에서 뿜어져 나온 환한 나이트 불빛으로 학교 운동장까지 환해졌고, 간간히 함성소리가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우리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어떤 친구들은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7회나 8회쯤에 맞춰 야구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제 나의 고등학교가 정말로 내 기억에만 남게 됐다. 교련복을 입고 나무로 된 목총을 들고 데굴데굴 굴렀던 운동장도, 도시락라면에 밥을 말아먹었던 어두침침했던 매점이 있던 건물도 사라졌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히죽거리던 교련 선생님의 얼굴과 무표정했던 매점 아줌마의 얼굴이 또렷한데도.............

시간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면 잊혀 질 것이다. 건물은 변해도 학교는, 운동장은 남아서 혹 언젠가 찾아가면 추억을 더듬을 수도 있으련만 이제 그런 기회마저도 없어졌다. 그러나 그나마 학교 이름은 그대로라는 데서 나는 겨우 겨우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혹 같은 이름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배를 만나면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모교의 추억을 전설처럼 얘기는 해줄 수는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그 공간의 추억이 사라질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없어지는 것은 학교의 역사가 끝나는 것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학교 이름이 유일하게 나와 나의 고등학교 후배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라고 생각했다.
 
공간이라는 것은 참 특별하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면 그 공간은 문득 내가 그곳에 있었던 그 시절로 나를 돌아가게 한다. 내가 걸었던 거리, 내가 앉았던 벤치 그리고 그 길에서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함께 마셨던 커피와 술, 그 공간에 가면 결코 지울 수 없는 나의 과거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듯 나에게 다가온다.

#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결혼을 앞둔 남자 주인공 사쿠타로가 고향에 왔다. 고향은 고등학교 시절 그의 첫 사랑인 아키와의 추억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온 세상이 넘칠 정도로 사랑했지만 죽음은 그들을 갈라놓았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호주의 울루루를 함께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갔다. 사쿠타로가 다시 고향에 왔다. 아키가 남긴 테이프를 마이 마이 카세트에 넣고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는다. 그들이 함께 있었던 학교 강당으로 그는 달려간다. 그리고 강당 피아노 앞에 서서 이어폰을 꽂은 채 마이 마이에서 들여오는 아키의 마지막 음성을 듣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야기를 듣는 사이 여자 친구가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아노 음악이 흐르고 남자와 여자는 그때 그 시절, 못 다했던 시절로 돌아간다. 강당은 사쿠타로에게 과거의 시간을 다시 되돌려 준다. 아키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마치 오랫동안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그런 공간이 있다. 할아버지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런 특별한 공간이 있다. 기쁨을 주는 공간, 슬픔을 주는 공간. 어떤 이에게는 기쁨의 시간을 되돌려 주는 공간이 어떤 이에게는 슬픔과 아픔의 시간을 되돌려 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주연이었던 공간이 어떤 이에게는 조연이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을 켜켜이 쌓아두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얽히고 설켜 차곡 차곡 쌓인 추억이 그 공간의 역사가 아닐까 싶다.

대학로라는 공간도 무수한 사람들의 수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대학로에서 대학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을 위해 대학로는 그들이 누렸던 젊음과 낭만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며, 동시에 그 시절, 시대의 아픔을 술과 담배로 감내하며 보냈던 이들을 위해서도 대학로는 분명 젊은 날의 울분과 열정을 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또 노래와 춤과 몸짓으로 울부짖고 뭔가를 토해내야만 했던 사람들, 선배들 밑에서 연극정신을 배웠던 연극인들을 위해서도 춥고 배고팠던, 그렇지만 열정만큼은 순수했던 그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잘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다시 그들이 찾아오면 대학로는 오직 자신만이, 또는 그들만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소리와 그림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리플레이 시켜 줄 것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를 다닌 사람들은 아직도 가끔 동숭동 캠퍼스의 향수에 젖는다. 시계탑 앞 잔디에 누워 맞았던 햇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띤 토론을 벌이던 마로니에 그늘, 모차르트 40번을 들으며 모닝커피를 마시던 학림다방, 학생증을 맡기고 외상을 긁었던 튀김 집이나 자장면 집 진아춘의 낭만을 말한다. 또 낡은 가방에 모자를 쓴 꼭 고물장수 같았던 노 교수님이 가끔씩 허리 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꾸부정한 채 길을 따라 오시던 모습을 되살린다." <대학신문, 2003년 9월6일자, 서울대 김종서 교수,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손성진 지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