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집 발표…"015B와의 만남은 인생의 탈출구"
MBC TV '황금어장'의 코너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김건모는 "윤종신의 노래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음악적으로 뛰어난 후배지만, 노래는 취미로 하세요"라고 유머 섞인 충고를 해 진행자 윤종신(39)을 당황케 했다.
신세대에게는 5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인 윤종신이 가수라는 사실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25일 발매될 '동네 한바퀴'까지 총 11장의 정규 음반을 보유한 싱어송라이터다.
사실 1990년대 윤종신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에게는 그가 '예능 늦둥이', '어설픈 어르신'으로 불리는 것이 더 어색하다. '텅빈 거리에서'를 부르며 015B의 객원 보컬로 데뷔해 1991년 1집을 발표한 이래 그는 정직한 발음으로 노래하는 서정적인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이다. 음반 공백기 동안에도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썼고, 옥주현, 박화요비 등 후배들의 음반에 작곡가로 참여했다.
이번 11집은 2005년 10집을 낸지 3년7개월 만의 신보이며, 015B의 정석원이 윤종신의 음반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은 2집 이후 16년 만이어서 더욱 반갑다.
최근 만난 윤종신에게 '가창력 논란(?)'을 묻자 "내가 가창력의 기준에 부합되는 창법이 아니란 건 인정한다"며 "나는 나만의 화법이 있는 가수"라며 크게 웃었다.
◇정석원과 프로듀싱 팀 '도피오' 결성
윤종신은 자신이 설립한 음반기획사 이름을 뮤직 도피오(Music DOPIO)로 변경하고, 정석원과 프로듀싱 그룹 '팀 도피오(Team DOPIO)'를 결성했다. 내년에 객원 보컬을 기용해 팀 도피오의 6곡이 담긴 미니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다.
"도피오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의미해요. 석원이 형과 저의 음악적 산물은 모두 도피오의 작품이 될 겁니다. 젊고 독특한 뉴웨이브 음악도 해볼 것이어서 음악이 좀 변태스러울 수도 있어요. 하하."
그는 "석원이 형은 나보다 훨씬 예민한 완벽주의자여서 내가 얻는 게 더 많다"며 "나는 초반에는 열심히 멜로디를 쓰다가 뒷심이 부족한데, 형은 내가 용두사미인 걸 무척 싫어한다"고 '껄껄' 댔다.
윤종신에게 015B와의 인연은 탈출구였다.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자취하면서 수업도 안 들어가고 술을 마시거나 곡을 썼다"며 "학사 경고를 받고 학업을 포기하려던 찰나, 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노래하는 나를 본 015B의 지인 덕택에 객원 보컬로 발탁됐어요.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건 아니지만,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라고 돌아봤다.
이후 그는 대학 입학금이 80만원이던 시절, 3년에 300만원을 받고 대영AV와 두 장의 음반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슬픈 사랑 넘어 삶의 시야 넓어져
히트곡 '환생', '너의 결혼식', '부디'에서처럼 떠나간 사랑에 슬퍼하던 윤종신을 이번 음반에서는 찾기 힘들다. 2006년 12월 테니스 선수 출신 전미라와 결혼한 이후 낸 첫 음반에는 사랑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
윤종신, 정석원의 끈끈한 분업화를 통해 걸러진 음악은 어쿠스틱한 질감을 갖고있다. 윤종신은 "9집 이후 음악이 내추럴해지고 있다"고 했다.
아내와 산책하다가 가사가 떠올라 쓴 '동네 한바퀴', 종로구 청운동에서 야경을 바라보다 떠오른 '야경'은 여유롭고 담담하다. 아들 라익이에게 바치는 헌정송 '오 마이 베이비(O My Baby)'는 캠코더에 담겼던 오디오 파일의 아내 목소리로 마무리 했다.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너도 잘 살았으면 좋겠고, 나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는 거죠. 지금 보니 이게 맞아요. 돌이켜보면 울 일이 아니었는데…. 과거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게 지금 제 사람에게 잘 하는 바탕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예전까지는 흐름대로 살았는데, 아이가 생긴 후 의무감 있는 삶이 되더라"며 "요즘은 그 삶이 나의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내 인생의 큰 변화를 줬기에 아이를 위한 노래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MC몽의 랩이 담긴 타이틀곡 '즉흥여행'도 삶이 힘겨운 이들에게 여행을 떠나자는 경쾌한 노래다. 그의 히트곡 '내사랑 못난이', '팥빙수'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주가 폭락으로 제 주위 사람들 모두 돈을 잃었죠. 취업 시즌인데 실업률은 높고요. 후배와 친구들에게 '이럴 때는 놀러가는 게 최고'라고 말해요. 숨 막히는 세상, 잠깐 등 질 수 있는 건 여행이 최고잖아요"
굳이 윤종신의 예전 느낌을 찾으려면 더블 타이틀곡인 '내일 할 일'을 들으면 된다. 그는 "내가 만든 곡에는 '이별 준비 시리즈'가 있는데 7집의 '이별을 앞두고', 리즈의 '헤어지기 좋은 날'입니다. '헤어지기 좋은 날'의 아까운 한 문장이 있어 다시 이 곡에 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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