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취재파일로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제 국회는 완연히 예산안과 법안심사의 계절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들어 정치권의 이슈는 각종 법안과 예산안, 종부세 같은 세제 개편안 등이 차지하고 있죠. 가뜩이나 경제상황까지 나빠지면서 내년도 재정지출을 어떻게 할 지, 세입을 어떻게 할 지, 경기부양은 어떤 방식으로 할 지가 가장 큰 쟁점입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바로 쌀 직불금 국정조사입니다. 하도 이슈가 빠르게 바뀌다 보니 쌀 직불금 불법 수령문제가 언제 있었냐 싶기도 하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 국회에서는 불법 수령자를 가려내고 제도 개선을 위한 국정조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국정조사 특위 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료 때문인데요. 여야는 공방만 계속하며 허송세월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크게 두가지죠.
하나는 정부가 제출한 불법 수령 의혹자 28만명의 명단입니다.
당초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면서 국조특위 위원 전체에게 이 자료를 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국회에 방을 하나 마련해 특위 관계자들이 방에 와서 열람하도록 했는데 그것도 손으로 쓰는 메모만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이렇게 해서 정해진 기한 내에 어떻게 조사를 마치냐며 강하게 반발했죠. 이 문제로 여야는 국조특위 활동의 거의 전반기를 다 보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야 합의로 이 명단을 여야 간사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 명단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한다는 서약서를 받기로 했죠.
만약 유출될 경우에는 법적인 책임을 진다는 약속과 함께요.
이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문제가 있습니다.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자료죠.
쌀 직불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지난 해 감사원이 건보공단에 의뢰해 쌀 직불금 불법 수령 의혹자를 가려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우선 왜 갑자기 뜬금없는 건보공단 자료가 등장하는 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28만 명이라고 하면 말이 그렇지 정말 방대한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농사를 짓는 지까지 확인하려면 아마 몇년에 걸쳐 많은 인력이 투입돼야 진상이 가려질만한 일이죠. 그런데 건보공단에는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그 사람의 소득과 주소, 직업에 관한 정보가 상세히 나와 있는 겁니다.
따라서 조사를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건보공단 자료만 있으면 매우 빠른 시간안에 부정 수령 협의자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고위공직자로 재직한 사람이 남도 지방에 땅을 갖고 있다며 직불금을 수령했다면 이는 불법 수령일 가능성이 높은 거죠.
하지만 현재 명단만 나와 있는 상태에서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건보공단은 그러나, 이 자료를 넘길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근거는 간단합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서라는 것이죠.
개인정보를 수집 목적에서 벗어난 용도로 활용해서는 안된다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3조 2항을 들어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건보공단 자료가 쌀 직불금 수령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 수집한 것이 아닌데 이런 용도로 자료를 내 주는 것은 법을 위반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4조를 들어 군사 외교 등 국가 기밀이 아닌 사항에 대해 국가기관이 증언이나 사류제출을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 감사원에는 자료를 줘 놓고 이제 와서 못주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내놓고 있습니다.
법리적 해석은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쌀 직불금 문제로 시작한 국정조사가 이제는 개인정보 보호 논쟁으로 변질됐다는 느낌입니다.
멍든 농심을 달래주고 또 제도를 확실히 개선해 다시는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가로채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할 작업은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매듭짓고 가야 합니다.
정치적 합의란 서로 상충되는 논리와 법리, 집단간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하루 속히 문제의 해결이 도출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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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디찬 세상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김호선 기자는 2001년 공채로 입사해 지금은 정치부 정당팀에서 맹활약 중입니다. 회식 자리에선 재치있는 성대모사로 동료들을 웃기는 김 기자는 모닝와이드 '국제뉴스'로 시청자들을 만나기도 했고, 사회부 시절에는 명문 사립대들의 '내신 무시' 입시 관행을 특종보도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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