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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가 - 대학로의 유래

주시평

입력 : 2008.11.21 18:34|수정 : 2008.11.21 18:36



대학로가 대학로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옛 서울대학교 때문이다. 지금은 서울대학교가 관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지만 1975년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대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은 동숭동에 있었다. 문리과대학 자리는 마로니에 공원으로 변했고, 옛날 법과대학 터에는 서울사대부속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들어섰다. 물론 옛 서울대학교의 흔적은 남아있다. 마로니에 공원 중앙에는 옛 서울대학교 캠퍼스의 조형물이 남아 서울대학교가 동숭동에 있었음을 기념하고 있고, 바로 오른편에는 옛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이 유일하게 헐리지 않고 남아 지금은 문화예술위원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는 아직도 동숭동 바로 옆인 연건동에 남아 서울대학교 캠퍼스의 옛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서울대학교가 있어서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이곳을 '대학로' 정확히는 '문리대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물론 누가 언제부터 '문리대길'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의해 서울대학교가 지금의 관악 캠퍼스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은 그렇게 불렸다. 그러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울대 종합 캠퍼스화 정책에 따라 서울대학교는 관악 캠퍼스로 옮겨졌다. 동숭동에 있던 본부와 문리대, 의대, 법대, 약대와 용두동에 있던 사범대, 종암동에 있던 상과대, 공릉동에 있던 공대, 수원에 있던 농대 중에서 의대와 농대만 남기고 모두 관악캠퍼스로 옮겨졌다. 대학의 체제도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문리대는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 3개의 단과대로 분리됐다.

 

동숭동 캠퍼스에서 대학시절을 다니다 관악 캠퍼스로 옮겨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낯설음 이상이었다고 한다. 동숭동 시절의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새 캠퍼스에서는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빠리에서 택시 운전사를 했던 홍세화 씨는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새 학교인 관악캠퍼스로 복학했을 때 느꼈던 인상을 이렇게 전했다.

 

"관악은 실로 낯이 설었다. 문리대는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 등으로 쪼개졌고 외교학과는 사회대에 있었다. 연극회를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내가 찾아가야 할 연극회가 어느 대학 소속인지 알 수 없어 찾기를 그만두었다. 문리대는 죽었고 그 정신도 죽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내가 복학한 그 대학은 내가 다니던 학교가 아닌 아주 생소한 곳이었다. 장소뿐만 아니알 분위기까지. 이방인이 되어 벙벙하던 나에게 아주 반갑다는 듯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 사람이 있었다. 남대문경찰서 형사였다. 그의 손을 맞잡으면서 나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반긴 사람은 그 뿐이었으므로."<'나는 빠리의 운전사' 중에서>

 

서울대학교 이전에 대해 박정희 정권은 캠퍼스가 흩어져 있어서 비효율적인 점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단과대학별로 흩어져 있던 서울대학교를 서울의 변두리인 관악산 기슭으로 이전하는 것을 놓고 서울대를 서울 중심지에서 내쫓는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박정희정권 입장에서 보면 데모하는 대학생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고 또한 그런 대학생들을 서울 중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한데 모아두면 일단 눈앞에서 멀어져서 좋고 또 데모하는 학생들을 관리하기도 편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이 동숭동을 떠나면서 자연히 '문리대길'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명분이 사라져 버렸다. 서울대학교가 떠난 동숭동 자리에 서울시는 공원을 조성했다. 이제 대학이 없어진 그곳은, 문리과대학이 있어서 문리대길이라고 불렸던 그곳은 이제 더 이상 문리대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건물이 허물어지고 대학의 흔적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섰지만 사람들은 문리대길이라는 그 땅의 흔적을,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을 허물듯 그렇게 쉽게 기억 속에서 허물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기차역을 없애고 다른 장소에 신식 기차역을 세워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역(舊驛), 신역(新驛)이라고 구분해서 부르며 과거의 습관과 기억을 일순간에 지워내지 않듯이 말이다.

 

옛 법과대학 자리였던 서울사대부속 초중교 옆 골목길을 가면 인상적인 간판이 있다. 법대문방구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상대로 문구류를 팔거나 과자를 파는 구멍가게지만 과거에는 법대생들이 주로 이용하던 서점이었다고 한다. 서울법대는 동숭동을 떠났지만 법대 앞에 있던 서점은 비록 서점에서 문방구로 변했긴 했지만 법대라는 이름은 버리지 않고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듯, 문리과 대학이 없어지고 마로니에 공원이 들어섰지만 사람들에게 그곳은 여전히 문리대길, 대학로라고 불렀다. 건물은 사라졌어도 그 땅의 역사는 사라지지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켜졌다.

 

결국 10년 뒤인 1985년, 서울시는 이 일대를 다시 정비하면서 옛 서울대학교 때의 이름을 다시 사용하자는 당시 정한모 문예진흥원장의 건의에 따라 이곳의 명칭을 문화지구 '대학로'라고 정식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 땅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결국 그 땅의 이름과 상징을 마침내 되찾은 것이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