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수돗물을 페트병 등 용기에 담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수도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습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생산하는 페트병 수돗물이 일반 생수처럼 마트나 동네 슈퍼에서 판매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각 지자체들은 저마다 브랜드를 내걸고 페트병 수돗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아리수'가 있고, 부산에는 '순수', 대전에는 잇츠(It's)수'라는 페트병 수돗물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돈을 받고 판매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공 행사장이나 재난 현장에서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페트병에 수돗물 판매를 목전에 두고 있는 서울시는 과연 일반 시민들이 수돗물 판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수돗물의 품질에 대해서는 선진국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환경부가 실시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36%는 수돗물이 마시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면서도, 1.4% 극소수의 사람들만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수돗물을 끓이거나(43%), 정수기로 정수해서(41%)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은 것을 돈을 내고(500ml 기준으로 200원을 조금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시라니… 불만 있는 시민들이 나올 수 밖에 없겠죠?
페트병 수돗물에 대한 이런 불만들을 사전에 좀 누그러뜨리기 위한 건지, 서울시가 최근 이색적인 자료를 하나 내놨습니다. 페트병 수돗물 '아리수'를 마심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인 이득을 몇 가지 항목별로 제시한 것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대신 '아리수'를 마실 경우 절감되는 금액
1) 수돗물을 끓일 때 드는 연료비 : 30억 7천만 원
2) 수돗물을 끓이는 15분 동안의 가사 노동비 : 334억 5천만 원
3) 물을 끓이는 가스레인지의 감가상각비 : 6천만 원
4) 이산화탄소 발생 비용 : 2억 5천만 원
5) 보리차를 넣어 끓일 경우 보리차 구입비 : 125억원.
서울시는 이런 계산을 제시하며 보리차를 끓여 마시는 대신 '아리수'를 마시면 연간 5백억 원 가까운 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스레인지 감가상각비까지 계산했다는 게 정말 놀랍군요! ㅋ~)
이런 주장에 대해 환경론자들의 반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보리차를 끓여 마시는 것은 순전히 개인 취향인데, 이런 자료를 근거로 '아리수'를 마시는 게 경제적인 이득이 된다고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라는 것입니다. 또 보리차를 끓일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까지 환경적 비용으로 산출하며 마치 '아리수'를 마시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것처럼 홍보했지만, 페트병을 생산하고, 운반하고, 폐기할 때 발생하는 엄청난 이산화탄소는 간과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서울시가 생산한 페트병 '아리수'는 모두 320만 병. 이 가운데 69%만 재활용됐습니다.
나머지 31%의 페트병을 새로 만든다고 하면 4만 5천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재활용이 불가능한 페트병을 폐기하려면 7천 6백kg, 페트병을 운반하려면 9천 3백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페트병 제작, 운반,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문제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페트병 물을 담아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법안들이 하나 둘씩 통과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가빈뉴섬 시장은 지난해 7월 시청 전 부서에서 페트병 물 구매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지난 6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국 250개 시장단 회의에서도 페트병 물은 자연재해 또는 오염사고 등 비상시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을 골자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지난 8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시도 공공시설에서 병물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미 탄산음료와 생수 용기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페트병. 여기에 각 지자체들이 본격적으로 페트병 수돗물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페트병 공화국'이 될 것 같습니다. 각 지자체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몰두하는 기업체와 뭔가 다르다면, 단순히 페트병 수돗물을 팔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환경 오염 문제 해결에 대한 명확한 대책부터 내놓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 |
[편집자주]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성실한 취재로 생활밀착형 기사들을 많이 전해주는 이병희 기자는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2001년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과 기획취재팀, 정치부 등을 거친 이 기자는 지난 2002년에는 시장의 저가의류에 유명상표를 붙여 비싸게 되파는 시내 유명백화점의 실태를 심층고발해 큰 반향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