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나의 대학로 (2)

주시평

입력 : 2008.11.20 21:57|수정 : 2008.11.20 22:02


나의 대학로 (1) 보러가기 ☞

혜화역 3번과 4번 출구의 대학로는 혜화역 1번과 2번 출구로부터 시작되는 대학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혜화 전철역 4번 출구부터는 화려한 간판을 내건 술집과 음식점 그리고 액세서리 가게들이 정신없게 즐비한 젊은이들의 거리가 펼쳐진다. 그곳에는 무표정한 자동차들의 소음과 경적 소리 위로 사람들의 터벅터벅, 또각또각 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재잘 재잘거리고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와, 불협화음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흐른다. 대명거리라고 하는 이곳은 대학로에서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혜화역 3번 출구부터는 대학로의 색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다. 3번 출구 앞에 자리 잡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좌판들을 돌아서 지난 다음, 오른쪽 약국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마치 유럽의 어느 거리에서나 볼법한 아기자기한 카페가 수줍은 듯 자리 잡고 있다. 담쟁이 넝쿨과 꽃으로 입구를 살포시 가린 카페는 마치 장옷으로 살짝 얼굴을 가린 조선시대 여인네 같기도 하다. 거기서 내쳐 조금만 더 골목길을 기웃 기웃거리면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옛 골목길을 발견할 수 있다. 기와지붕을 얹고 있는 나무 대문집들이 남아있는 좁은 골목길. 알게 모르게 넓고 시끄러운 도로와 길에 익숙해진 나에게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있었구나'

어느 조용한 아침, 나는 홀로 이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아침만이 주는 그 특유의 조용함과 아침만이 주는 그 특유의 신선함이 나를 포근히 감싸 안는 듯 했다. 나는 이 집 대문을 보고 사진을 찍고, 저 집 쇠창살 창문을 보며 회상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은 여전히 고요했다. 오직 내 발걸음 소리만 내 귀에 들리는 그 좁은 골목길. 그러다 문득 나는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 골목길 SCENE (어느 조용한 아침, 카메라 Full Shot, 조용한 음악이 깔린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맨 30대 후반의 한 사내가 혼자서 좁은 골목길을 터벅 터벅 걷는다.
가끔씩 이 집 저 집을 잠깐씩 살펴 본다.
그리고 다시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간다
어느 순간 점점 그 사내가 입고 있던 옷이 점점 헐렁해진다.
어른이던 사내의 몸집이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어느새...한 소년이 헐렁한 어른의 옷을 입고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 마다 골목길을 서서히 어른인 나를 유년 시절의 나로 이끌었다. 저 나무대문을 열면 젊었을 때의 우리 엄마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고, 저 대문 앞에서 "친구야 놀자~" 하고 친구를 부르면 곧바로 친구가 대답 할 것만 같았다.

골목길의 끝이 보였다. 아 ~, 절로 한 숨이 나왔다. 젊었을 때 우리 엄마가 여기 있을 것만 같은데, 저 담 너머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 골목길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한참을...

3번 출구 뒤에 조용히 있는 대학로의 또 다른 모습, 그곳은 대학로이면서 대학로가 아닌 곳이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문화 공간' 대학로는 1번 출구에서 만나는 대학로가 다르고 2번 출구로 나가서 보는 대학로가 다르다. 그리고 3번과 4번 출구로부터 펼쳐지는 대학로가 또 다르다. 소극장들이 있어서 대학로만의 특별한 공간성을 지니고 있는 그곳은 세련된 사람들이 주로 간다는 럭셔리한 청담동이나 압구정과는 분명 다른 느낌을 준다. 그곳은 또 멋진 퓨전 술집과 클럽이 많다는 모던한 홍대 앞과도 다른 분위기다. 그곳은, 나 같은 사람을 왠지 주눅 들게 만드는 강남 같지 않고 또 나 같은 사람을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홍대 앞과도 같지 않다.

강남과 홍대 앞에 가면 나는 그저 행인일 뿐이다. 하지만 대학로는 그렇지 않다. 소극장들이 버티고 있는 대학로에는 겉멋 부리는 허세와 유세 대신 예술이라는 짐을 스스로 어깨에 짊어진 사람들의 순수함과 열정이 살아 있다. 또 여전히 '연극 정신'을 외치는 대학로에는 나의 '에로스'를 자극하는 스킨과 향수 냄새 대신 무뎌진 나의 '필리아'를 일깨워 주는 대학로 사람들의 땀 냄새와 대학로의 역사가 배어 있다. 나에게 대학로는 그런 공간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