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순간의 선택, 평생의 후회

김요한

입력 : 2008.11.20 13:30|수정 : 2008.11.20 15:57

대출은 내가 받고 돈은 남이 갖고


노숙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사람들의 명의를 이용해 돋을 갈취한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얼마 전 서울 광진경찰서에서도 같은 수법의 일당이 잡힌 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이번에 붙잡힌 사람들은 어리숙한 노숙자들을 상대로 했고 액수가 좀 커서 그렇지 이런 식의 범죄가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지난 봄에도 같은 수법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을 취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칫 기발하고 대단하기(?)까지 한 수법들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면서도 당당한 무책임함과 몰지각함에 몹시 씁쓸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팍팍해졌다고는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그에 대한 결과가 따릅니다. 본인이 그렇게 믿든 믿지 않든 상관 없이 말입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하지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조금만 일이 복잡해지거나, 마음 속으로 떳떳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에이.. 몰라 몰라." 그렇지만 꿩이 대가리를 쳐박는다고 주변 세상까지 깜깜해지는 게 아닌 것처럼, 무책임한 선택 또한 후에 올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떻게 <공돈>을 좀 벌어볼까 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 단순한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의 신용을 팔아서 돈을 챙겨온 이 사람들의 수법을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속칭 '찍새'라는 사람이 자신이 맡은 구역(서울역, 청량리역, 대전역 등)에서 노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는 "돈을 좀 벌어보겠느냐, 숙식도 모두 제공하겠다"는 미끼를 던집니다. 신문지를 덮고 대합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해야하는 이들은 삶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자고 따라나서지요. 그러면 찍새들은 이들을 모아 20평 남짓한 아파트로 데려옵니다. 보통 한 아파트에는 이런 식으로 따라온 노숙자들이 10여명씩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는 이런 노숙자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한 사람씩 있는데, 그 사람을 '방장'이라고 부릅니다. 재밌는 것은 이 방장들이 대부분 노숙자 출신이었다는 점입니다. 노숙자를 가장 잘 아는 것이 노숙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것도 괜찮은 직업이라고 느껴 자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방장들은 10여명의 노숙자들의 숙식과 부식 등을 책임집니다. 혹자는 노숙자들을 '감금'해 놓고 돈을 뜯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이 곳을 나가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노숙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탈출의 의지가 없었습니다. 일당들을 체포하러 온 경찰들에게 '왜 우리를 먹여주는 좋은 사람들을 잡아가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본격적인 작업은 데려온 노숙자들의 신용도를 조회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크레딧 뱅크> 사이트를 들먹이며 신용도를 조회하는 사람들을 주의하십시오. 신용도를 조회해 신용불량자가 아니면 바로 휴대전화와 통장을 개통합니다. 법적으로 휴대전화는 개인당 4개씩만 개통할 수 있는데, 브로커가 장난을 치면 그 이상도 가능하긴 한 모양입니다. 개통한 휴대전화로는 아이템 베이와 같은 사이트 등에서 소액결제를 마구마구 해 댑니다. 그리고는 대포폰으로 판매를 하죠. 개설한 통장은 10만원씩 받고 대포통장으로 판매를 하고요. 방장들은 노숙자가 휴대전화와 통장을 만들러 갈 때 말끔하게 씻기고 입혀서 데려 갑니다. 본인이 직접 만드는 거니까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청구서가 날아오거나 계좌추적을 해도 고스란히 노숙자들 책임인 거죠.

휴대전화와 통장을 만든 다음에는 신용대출을 받습니다. 일단 휴대폰 연체료가 생기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신용도가 나쁘지 않은 사람은 이 작업부터 하기도 합니다. 휴대전화를 팔아서 얻을 수 있는 돈은 푼돈(?)이니까요. 보통 은행거래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연체료 기록이 없다면 대개 신용등급은 5등급이나 6등급 정도입니다. 사금융을 이용하면 대략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를 신용대출로 빌릴 수 있죠. 제2금융권들은 심사가 은행권같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본인의 명의를 이용하는 경우라면 돈 빌리는 게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눈덩이 같이 쌓이게 될 이자도 원금도, 뭐 이들이 알바는 아니죠 물론.

이상은 아주 기본적인 방법들이고요. 여기에서 한 단계 진화한 방법도 있습니다.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를 위조해서 식당이나 옷가게를 하는 것처럼 관공서에 신고를 해서 사업자 등록증을 받아내는 거죠. 그러면 '사업자등록번호'라는 게 생기는데 이걸 속칭 카드깡 업자에게 팔아 넘깁니다. 그러면 카드깡 업자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수수료를 떼고 돈을 주고요, 이 때 발생한 매출 때문에 노숙자의 신용등급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으니 이런 식으로 작업을 계속하는 겁니다. 더 심한 경우는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기도 하고요, 자동차를 할부로 사서 대포차로 팔아 넘기기도 합니다. 참 무서운 세상이죠.

 

이렇게 여러 방법들을 사용해서 뜯어 낸 돈은 모두 자기들이 갖습니다. 그리고는 신용불량자가 되는 노숙자들이 생기면 쫓아내거나 그 사람을 놔두고 이사를 갑니다. 필요없는 사람도 떼버리고, 자기들의 은신처가 노출되는 것도 피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들은 이런 식으로 김포지역에서만 대여섯군데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이들을 검거하는 데까지 2달이 걸렸다고 합니다.

생활광고지나 길거리에 <돈 즉시 대출해 드립니다> 같은 광고를 내는 곳들이 있는데, 이런 곳들 중에 이런 식으로 남의 신용을 이용해서 돈을 빌리는 곳이 많습니다. 직장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꾸미거나, 금융사에서 걸려오는 심사전화를 대신 받아 신용대출을 받아 주고는 수수료를 떼가는 식입니다. 본인 동의하에 한 것이니 채권추심의 책임은 고스란히 돈을 빌린 사람이 물게 됩니다. 뒤늦게 후회해 봐야 이미 쌓인 원금과 이자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를 갚지 못해 결국 파산을 하게 되고, 나중에 사업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죠.

노숙자 분들을 비하하려는 뜻은 없습니다만, 이들은 어수룩한 노숙자들을 데리고 함께 가서 필요한 서류 등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자기 신용이 이용되는 줄은 알지만 정확히 뭐하는 건지 잘 몰라서 가만히 계셨던 분들도 있고,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안하겠다고 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분들도 계시죠. 수천만원 빚을 지고 신불자가 되어 뒤늦게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만.. 못된 이 사람들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빌렸던 돈이 모두 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갚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여러가지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당장 의욕이 없는 때에는 크게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만, 뭔가 마음을 새롭게 먹고 새출발을 하자고 각오를 하고 뛰어들 때쯤엔 뼈 아픈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김포지역 총책 남 씨를 비롯한 6명은 모두 구속됐습니다.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83명, 금액은 24억 7천만원이 넘습니다. 수십명의 인생을 송두리째 작살 내 놓은 이들이 받게될 형량은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몇년의 실형을 살게 된 다 한들, 이 사람들이 망가뜨린 수십명의 인생이 돌아 오겠습니까. 세상이 흉흉해 지는 게 꼭 나빠지는 경기 탓은 아니겠지만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경기가 참 착잡하게 느껴집니다. 혹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이 기억하셔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값진 것>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쉽게 벌고, 쉽게 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모든 input에는 output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사십시다.

  [편집자주] '겸손과 존중'이 취재의 좌우명이라는 김요한 기자는 2006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2부 사건팀에서 활약 중입니다. 섬세하고 끈질긴 취재력과 함께 수준급 실력의 '드럼' 연주까지 보도국의 팔방미인으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