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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하락의 두 얼굴

정명원

입력 : 2008.11.15 08:29|수정 : 2010.01.06 14:39


지난 7월 145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WTI:서부텍사스산 중질유 선물가격)가 불과 넉 달여만에 50달러 후반대로 떨어졌습니다. 엄청난 급락이죠. 요즘 좋은 소식은 유가 하락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국제유가(WTI)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해 가격을 전망하는 Financial Forecast Center 자료에 따르면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연말까지 더 떨어지고 내년 상반기는 지나야 조금씩 오른다고 하니 이 분석이 맞다면 '좋은 소식'은 오래갈 것 같습니다.

원유 선물시장 가격은 우리가 수입하는 두바이유 현물 가격에 그대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연간 9억 배럴 이상을 수입하는 우리 나라로서는 어려운 시기에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제유가 뿐 아니라 지난 6,7월 최고 가격을 찍었던 옥수수, 밀 가격은 물론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도 올 최고치 대비 40% 이상 떨어졌고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니 더욱 그렇겠죠.

  

국제유가가 이렇게 큰 폭으로 하락하는 데 왜 우리 국내 기름 값은 찔끔 내리느냐, 수입물가는 왜 10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7.1% 증가했고, 9월보다는 4.1% 늘었냐 하는 분도 있는데 이미 설명드린 헤지펀드 Run과 연말까지 달러로 빚을 갚아야하는 은행들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어 유가하락을 가격으로 반영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위 그림에 보인 전망치대로 한 동안 저유가 수준이 유지된다면 원·달러 환율이 진정을 찾는대로 가격에 반영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춤하고 있는 소비자 물가 급등세도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국제유가 하락은 '좋은 소식'일 수 있지만 하락하는 이유는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올들어 국제유가가 종가 기준으로 145달러까지 올랐던 이유는 중국이나 인도 등 고도성장국가들이 필요한 원유 수요를 공급이 채우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컸습니다. 이에 편승해 돈을 벌어보려했던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거품을 만들기도 했죠. 원유와 상품시장에서 활동하던 펀드가 세계적으로 630개가 넘었고 이들이 굴린 돈만 2천6백억 달러 이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신용경색 쓰나미'로 이 펀드 가운데 상당수가 망하거나 시장을 떠났습니다. 여기까지는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라 좋았는데 문제는 원유 수요에 대한 전망까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신용경색 쓰나미'가 금융을 넘어 실물경제에 파급을 미쳐 미국, 영국, 유럽 등이 경기침체에 접어들었고 세계 경제의 60%를 책임지고 있는 선진국들이 내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란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처럼 세계경기 동반침체에 대한 우려가 유가 하락을 이끌고 있죠.

무엇보다 계속해서 고성장을 하며 세계 경기를 끌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이른바 브릭스 국가들이 선진국 수요 급감 여파로 성장이 주춤하는 지표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브릭스 국가의 내년 성장 전망도 낮아지면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OPEC이 감산을 한다고 해도 원유 수요가 줄 수 밖에 없는 세계 경기 구조라면 유가가 급반등하기 힘들고 같은 이유로 올들어 급등했던 밀, 옥수수, 철광석 가격 등이 일제히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거죠.

나쁜 소식은 또 있습니다. 국제유가 하락은 세계 경제의 석유에 대한 '중독'을 치유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국제유가가 120달러를 넘어 150달러를 육박할 때 세계 주요 국가, 특히 우리처럼 석유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에너지 절감과 석유의존도를 줄일 대책을 일제히 내놓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녹색성장 산업 육성이나 미 대통령 당선자인 오바마가 내놓은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공약 등이 대표적이죠. 오바마 당선자는 여러 차례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해 미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나 우리 녹색성장 산업에 더 많은 기업이 투자하고 활황을 일으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아이러니하게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해 줘야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80달러 이상 수준은 유지해야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경제성을 갖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제 유가가 최근처럼 이렇게 하락하면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경제성을 얻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지난 주 캘리포니아 재생에너지 업체는 1갤런에 4달러를 육박하다 이제 1달러 후반대로 떨어지자 신용경색과 맞물려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각종 석유의존도 경감대책을 내놓았다가 유가가 다시 하락하면 재생에너지나 석유의존도 탈피 사업보다는 원자재를 수입해 비축하는 정책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전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본과 더불어 석유의존도 비중이 높은 나라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