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전화 외교'에 나서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무려 30여분 동안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져 유럽 외교가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의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해 EU(유럽연합) 순회의장국인 프랑스와 미국 사이의 협력 외교가 본격 궤도에 오를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기대섞인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취임 후 민감한 현안들이 본격 부상하면 유럽과 미국은 냉기류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오바마-사르코지 찰떡궁합"=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바마 당선인과 이처럼 장시간 통화함으로써 오바마 당선인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는 물밑 경쟁에서 주변국 지도자들을 따돌리고 리드를 굳힌 셈이 됐다.
두 사람 간의 이런 통화 시간은 주변국 정상들의 통화시간을 최소 2배 이상 웃도는 것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0분 가량,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10-15분 가량 오바마 당선인과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정상들의 통화시간은 정확히 전해지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오바마 당선인과 통화한 15개국 외국 정상 가운데 사르코지 대통령이 가장 긴 대화를 나눈 기록을 세운 것으로 추정돼 실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주목되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이 이처럼 길어진 것은 자크 시라크 전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 사이에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고 대미 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프랑스가 반대해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 온 양국은 작년에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 이래 화해 국면으로 돌아섰었다.
이 같은 통화시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프랑스 양국은 전례없는 화해의 시대를 구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크래크 스페이플턴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가 밝혔다.
스테이플턴 대사는 앵글로-아메리칸 언론인 연합이 파리에서 주최한 한 모임에 참석한 자리에서 사르코지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은 '찰떡 궁합'이라고 치켜 세운 뒤 두 사람은 공통점도 많다면서 이같이 내다봤다.
그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였으며 오바마 당선인 역시 아웃사이더로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라며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변화를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은 매력적인데다 똑같이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 있으며, 다른 공통점도 적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이 오는 1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는 기간에는 양자 회동이 예정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당선인도 당분간 글로벌 금융위기 대책마련에 부심하느라 내년 1월 20일 취임 후 유럽방문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 소식통들은 내년 4월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가 오바마 당선인의 유럽 데뷔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스테이플턴 대사는 "지금으로서는 경제위기 대처 문제가 그의 최우선적인 국정 과제가 될 것"이라며 "따라서 오바마 당선인이 유럽을 방문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U-美 관계 시험대 오르나=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각국은 오바마 당선인의 실용주의에 은근히 기대를 하면서 그의 당선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금융위기와 기후변화 문제 등과 관련한 오바마의 시각을 진단해 보느라 분주하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각종 현안들이 수면 위로 부상해 미국과 EU 사이의 관계가 본격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EU 국가들은 기후변화와 관련, 오바마 당선인이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능동적인 입장을 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현재의 경제위기로 인해 오바마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동문제에도 미국이 적극 개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현격한 시각차도 드러나고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핵무기 보유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조건없이 이란과 대화하겠다고 밝혀 유럽인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 몽드가 전했다. 대(對)이란 강경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는 오바마 당선인에게 "반대급부없이 이란과의 국교 재개 카드를 꺼내들어선 안된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