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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에서 만나는 고구려

유재규

입력 : 2008.11.07 14:20|수정 : 2008.11.07 14:20


지난달 중순부터 출입처를 바꿔 경기 북부 지역 소식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경기도가 경기 북부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새단장 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는데요. 의외로 경기 북부 지역에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더군요. 휴전선 근처 지역이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인지 잘 보존된 곳이 많습니다.

단, 아직 분단 국가라 군사 시설로 전용되고 있는 곳도 있고, 과거의 요충지는 현재도 그렇기 땜에 근처에 지뢰밭이 있는 곳들도 있고 하단게 문제죠.

하지만, 잘만 다듬는다면 우리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곳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간단하게 연천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소개할까 합니다.

한때 고구려 열풍이 불었습니다.중국의 동북공정에 각종 드라마의 영향이었겠죠. 저도 최인호 씨가 썼던 역사 소설 몇 권을 읽고 고구려 유적이 보고 싶어 중국 동북지방 여행을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걸어다니며 유적을 보기엔 여건이 좋지 않더군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이런 분들에게 최적의 장소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강 유역은 삼국 시대부터 최고의 격전지였습니다. 국사 시간에 배우길 백제는 4세기, 고구려는 5세기, 신라는 6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는데요.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있을 때를 기준으로 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의외로 멀게만 느껴지는 고구려의 숨결은 한강 줄기에도 남아있습니다.

고구려 했을 때 가장 쉽게 생각나는 곳이 바로 아차산입니다. 그래서 아차산을 끼고 있는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는 저마다 고구려 마케팅에 열심이지요.

그러나,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보면 1,500년 전 고구려군이 사용했던 '천혜의 요새'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중부전선 최전방인 경기도 연천은 임진강 하류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과거 화산 폭발 때문에 곳곳에 현무암이 널려있고요. 두께가 10에서 30미터에 달하는 용암대지가 형성돼있습니다. 그런데 임진강 물결이 용암대지를 갉아먹으면서 강가에 높이 20미터가 넘는 절벽들이 생겨났습니다.

천혜의 요새죠?

 

그런데, 임진강 곳곳을 지나다보면 이 절벽들 옆을 흘러 강과 만나는 개천을 볼 수 있습니다. 개천 물줄기가 출입구를 만들어낸 셈이죠. 고구려인들은 이런 곳마다 성을 쌓았습니다. 연천엔 고구려인들이 강가에 쌓은 성 3곳이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호로고루 입니다.

호로고루는 삼국사기에도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고구려와 신라가 이 지역에서 여러차례 전투를 치렀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당나라를 몰아낼 때 역시 이 곳에서 격전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란 말이겠죠.

지형적 특성 때문입니다. 임진강 하류 지역은 대부분 수심이 깊다고 합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선 반드시 배를 타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호로고루 지역은 수심이 얕습니다. 성인 남자의 무릎 정도 깊이라고 하네요. 물살도 세지 않아 말을 타고 건너기도 좋습니다.따라서 북쪽에서 서울로 보병이 진격하는 최단 루트라고 합니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치러갈 때도 이 곳을 지났을 것이라 추측되고요. 6.25 당시 인민군 전차 부대도 이곳을 건너 남진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90년대 후반까지 이 곳은 민통선이었고요. 지금도 곳곳에 군 초소가 있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습니다. 고구려 역시 호로고루를 임진강 유역을 방어하기 위한 국경방어 사령부 정도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호로고루에선 다양한 유물이 나왔습니다. 고구려군이 방어선을 쌓으면서 쌓았던 목책 흔적이 나왔고요. 쌀과 좁쌀, 콩, 팥 같은 곡식 흔적들과 동물뼈, 기와, 우물 흔적 들이 있습니다. 밥그릇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토기들도 나왔는데요. 그 크기를 보면 고구려인들은 우리보다 4배 이상 밥을 많이 먹었을 것이라고 하네요. 먹을거리가 다양하지 않았을테니 밥을 많이 먹었겠죠 ^^;;

고구려 기와는 신라, 백제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요. 우선 색깔이 붉은 계열이고요. 기와를 구워 틀에서 떼어낼 때 눌러붙는 것을 막기 위해 진흙에 천을 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포의 자국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성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와를 주워 보면 1500년 전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자국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호로고루에서 차로 20여분을 더 가면 당포성이 나옵니다.

구조는 호로고루와 거의 흡사한데요. 성벽이 훨씬 잘 남아있습니다. 호로고루는 신라군도 보수해 사용했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석벽은 신라인들이 쌓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포성은 온전히 고구려인들이 쌓은 석벽이라 고구려의 축성술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특이한 건 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홈이 나있다는 겁니다. 홈 아래쪽엔 동그랗게 판 확돌이 있고요.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과 평양의 대성산성 같은 고구려 산성엔 어김없이 이런 수직홈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홈의 용도가 무엇이었을까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투석기 같은 수성용 무기가 이 홈에 설치돼 있었을 것이란 학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의 전략적 요충지는 현대에도 그 역할을 계속합니다. 덕분에 이곳 당포성은 뜻하지 않은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은 우리 군이 이곳을 기지로 사용하고 있는 거죠. 그 당시엔 고구려 성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90년대 이후 민간인 출입이 가능해지면서 각종 문헌에 있는 기록을 토대로 발굴 작업을 통해 고구려 성이란 걸 알아낸 것이죠. 그 때문에 성벽을 관통해 벙커를 만들고 참호를 파고, 탱크도 몇 대 갖다놨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당포성은 국가 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마음대로 시설을 설치하거나 유지할 수 없습니다. 군 시설을 계속 유지, 보수 작업을 하려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건데요. 군은 허가 없이 그대로 보수 작업을 하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왕 훼손된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고구려성이란 것을 알게 된 이후엔 문화재 보호와 군사적 중요성을 함께 고려해 해결책을 찾아야 할텐데 말이죠...

  [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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