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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비둘기의 '정체성' 논란

권태훈

입력 : 2008.11.05 18:57


미국 대통령 선거결과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하루, 법제처가 도심 비둘기의 법적지위(?)를 평가하는 재미있는 법령해석을 내놨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도시에 서식하는 비둘기는 사람이 사육하지 않고 자생하기 때문에 '야생 동·식물 보호법'에 따라 야생동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럼, 비둘기가 야생동물이 아니고 뭐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그동안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법제처가 이런 법령해석을 내리기까지 관련부서인 환경부와 농식품부는 도심 비둘기의 법적지위와 책임소재를 놓고 그동안 어이없는 공방을 펼쳐왔던 것이다.

얘기는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가 도심속 비둘기의 개체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털날림이나 배설물 등으로 각종 민원들이 쇄도하자, 도심 비둘기를 어느 법에 따라 누가 관리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 아무래도 동식물 관련부서인 환경부와 농식품부에 행정자문을 구하게 됐다. 그런데 두 곳 모두 엉뚱한 대답을 보내왔던 것이다.

환경부는 '야생 동식물 보호법'상 도심 비둘기는 산이나 강에서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기르는 관상용 조류인 가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고, 농식품부는 도심 비둘기는 사람이 직접 사육하지 않기 때문에 축산법의 적용을 받는 관상용 조류가 아니며, 따라서 야생동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책임 떠넘기기식 공방이 몇 개월째 계속 이어지자 서울시가 급기야 법제처에 도심 비둘기의 법적지위를 묻는 행정자문을 구하게 된 것이다.

법제처는 "야생 동·식물 보호법 취지에 비춰볼 대 야생동물은 인간이 소유해 기르지 않는 모든 동물을 총칭하는 개념"이라며 "따라서 야생동물은 산이나 강뿐만 아니라 도시 등의 모든 생태계에서 서식, 자생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이유로 야생동물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비행장 주변에 출현해 항공기와 군작전에 지장을 주는 조수류나 전력시설에 피해를 주는 까치도 유해 야생동물로 규정돼 있다"며 "비행장이나 전력시설이 도시에 있다고 해서 조수류, 까치도 유해 야생동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도심 비둘기도 자생해 번식하기 때문에 야생동물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도심 비둘기를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도심 비둘기 관리문제를 놓고 관련 부처들이 이를 해결해 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보다는 귀찮은 것 떠안기 싫어서 "야생동물이다, 가축이다"라며 실랑이만 벌이다가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결국 법제처의 법령해석까지 받아야만 했다는 사실이 우리 정부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편집자주] 정치부에서 국무총리실을 출입하고 있는 권태훈 기자는 1994년 SBS에 입사해 사회, 정치 분야 등에서 폭넓은 시각의 기사들을 써왔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에는 서울대 교수직을 둘러싼 금품수수 관행을 정면 고발하는 특종기사로 대학가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