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앞에 있는 인형뽑기를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 30살 청년.
그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인형을 갖기 위해 16만 원을 한 자리에서 쓸 정도로 집착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갈비집에서 대리주차 일을 하면서 한 달에 1백만 원 조금 넘게 벌었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그만뒀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기보다는 주로 혼자 있었던 청년이었는데도, 의외로 많은 이웃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말을 터놓고 지낼 사람이 없어서였을까요.
누군가에서 한번 말을 시작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말을 쏟아냈다는데요.
특히 그가 자주 가서 말을 터놓곤 했다는 근처 가게 직원들을 찾아가봤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웬만하면 말을 안시키려고 하는데 (너무 말이 많아서) 혼자 자꾸 와서 끝없이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는 외로워 보였고, 또 어두워 보였습니다.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 '내가 노력하는 것 만큼 돈이 안벌린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던 걸 보면 일종의 피해의식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가 그런 끔찍한 범행을 할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겠죠.
10월20일 새벽 5시.
그 청년은 결심합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최소 3, 4년은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계획없이 태어난 늦둥이이며 가치없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비관해왔습니다.
게다가 예비군 훈련 제대로 나가지 않아 밀린 벌금 150만 원까지 있었고, 휴대전화 요금에 고시원 방세까지 하면 2백만 원 넘는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정맥류를 치료하기 위해선 3백만 원도 필요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막막하게 되자 그가 일기장에 써놓았던 것처럼 정말 '영화처럼 끝내려' 했던 겁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고 구입해놓았던 범행 도구를 하나하나씩 몸에 차고, 고글에 마스크, 게다가 머리엔 휴대용 랜턴까지…. '엽기적'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요.
아침 8시가 지나 그는 자신의 침대에 불을 지르고 불을 피해 방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마구 흉기를 휘두릅니다.
옆 방 사는 이름 모를 조용한 총각이 '공포의 살인마'로 변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출근 준비를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동틀 무렵 퇴근해 잠을 청하고 있었던, 다른 월요일과 다름 없었던... 그런 아침이었는데 말이죠.
공포에 질려 3층에서 뛰어내린 사람, 그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20군데 넘게 흉기에 찔린 사람...
그렇게 아무 죄 없는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무런 원한도, 그저 같은 고시원에 사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논현동 먹자골목에 들어서있는 고시원인 만큼, 주로 근처 식당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희생자 6명 모두 여성분들이었는데 그중에서 3분은 게다가 중국 동포들이었습니다.
고시원 쪽방에서 한푼 두푼 모아나가며 키워나갔던 그들의 소박한 꿈은 그렇게 왜곡된 30대 청년의 있을 수 없는 범행에, 그렇게...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사건 발생 첫날 바로 현장으로 뛰어가 취재하고, 경찰서 가서 취재하고, 유족들을 만나고... 그렇게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범행 동기를 밝히는 경찰 수사도 이제 거의 마무리 됐고, 피의자 정 씨는 현재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생된 6분도 다행히 곳곳의 지원으로 무사히 장례를 치렀습니다.
가족들의 아픔이야 어떻게 말로도 표현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장례 문제가 빨리 해결돼서 이제는 보낼 수 있을 것 같다하시는 유족들을 뵙고 나니 저도 이 사건을 취재했던 지난 일주일을 되짚어보며 이렇게 몇 자(치고 ...좀 길었죠?) 적을 마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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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활기찬 모습과 적극적인 취재로 SBS 사회부 사건팀의 분위기를 이끄는 정유미 기자는 2006년에 SBS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앳된 모습이지만 각종 사건.사고의 현장을 거침없이 누비며 보도국의 신세대 핵심전력이 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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