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일상, 팍팍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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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유행처럼 퍼져나갔던 말이 있죠.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입에 착 달라붙는 것이 묘한 매력을 지닌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취재를 하면서부쩍 이 말이 떠오르는 때가 많습니다.
지난 27일, 3살짜리 아이를 집에 버려두고 갔다가 열흘만에 경찰에 자수한 20대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또 아이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기사(☞ 분유값 없어 어린 자식을…생계형 범죄 잇따라)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24살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큰 목포 출신의 윤 모씨는 자기보다 4살 많은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3살짜리 아들과 1살짜리 딸을 두고 있었고요.
일용직 용접공으로 일하며 지내던 윤씨는 3개월 쯤 전에 실직을 하게 됩니다.
용접 기술이 있었는데도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했죠.
차곡차곡 들어가는 아이들 분유값이며 기저귀값에 한숨을 쉬었고, 그래서 급한 마음에 지인에게 100만원을 생활비로 빌렸습니다.
날이 지나도 일자리는 안 구해지고 돈은 줄어들고….급기야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인 집의 보증금을 뺐습니다.
집 주인에게는 9월 말까지 집을 비워주기로 했다는군요.
달포쯤 후,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질 않자 결국 윤씨는 1살난 딸과 아내를 충남 청양의 친정으로 내려보냅니다.
'난 금방 돈 좀 벌어가지고 내려가겠다'고 약속을 하고서.
그런데 청양의 처가도 사정이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처가살이를 할 수는 없고, 당장 일거리는 없고, 분유는 사야하고.
두 사람 모두 휴대전화도 없었기 때문에, 가끔하는 통화로 이런 시름을 나눴던 모양입니다.
아내를 내려보낼 때 세간도 다 딸려 보낸터라 집에는 남아 있는 살림살이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텅빈 방에서.. 윤씨는 고민을 계속하다 자정쯤 집을 나섭니다.
3살배기 아이를 그냥 방에다 남겨둔 채로.
주인에겐 9월 말까지 방을 비워준다고 했으니 다음날 정오 쯤 집주인은 방이 잘 정리 되었나 보러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다가 울지도 않고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는 아이를 보게 됩니다.
급한대로 근처 식당 아주머니가 아이를 맡아 며칠을 돌봐주었습니다.
집을 나선 남자는 의정부로 가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더군요.
돈을 좀 모아가지고 돌아와서 아이를 데리고 내려갈 참이었답니다.
아이는... 이웃 주민들이 발견해 돌봐주겠거니 생각했다네요.
아이는 평소에 잘 먹지를 못해서인지 발육부진이 있는 아이였는데, 3살이 되도록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아이를 쪽지 하나 안 남기고 버려두고 갔다는 게 어째.. 이해는 잘 안됐지만그래도 오죽하면 그랬을까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는, 자신이 형사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유기 사건을 2번 맡아봤는데 미성년자들끼리 아이를 낳아서 어쩔 줄 몰라 버린 적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살기가 어려워' 아이를 버린 건 처음이라더군요. 조사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사나흘 쯤 근처 식당에서 돌봐주다가 미아보호원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장기보육원으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윤씨는 불구속 입건되어 조사를 받고나서 아내가 머물고 있는 청양 친정집으로 내려갔고요.
조만간 아이도 데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며칠 전에는 소화전 송수구를 훔치던 일장이 붙잡혀 구속됐고 소화전 마개를 떼다 팔려던 50대도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돈이 될까 싶어 고물로 내다 팔려던 것인데..이렇게까지 우리 경제상황이 암담해졌나 싶어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더 나빠지면 안될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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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겸손과 존중'이 취재의 좌우명이라는 김요한 기자는 2006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2부 사건팀에서 활약 중입니다. 섬세하고 끈질긴 취재력과 함께 수준급 실력의 '드럼' 연주까지 보도국의 팔방미인으로 꼽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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