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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어떤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거니?

우상욱

입력 : 2008.10.29 10:20|수정 : 2008.10.29 10:25


매우 오랜만에 취재파일에 글을 씁니다. 교육과 관련해 처리해야 할 뉴스가 너무 많아서 글을 쓸 짬도 내기 어렵군요. 기자 입장에서는 기삿거리 고민을 해결해주는 정부가 고맙기도 하지만 우리 교육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어떻든 간만에 취재한 파일을 풀어놓으면서 고려대 수시 전형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려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게시판이 말 그대로 난리가 났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와 원망, 심지어 욕설까지…. 잘 아시는대로 이번 수시 2-2학기 전형 1차 합격자 때문입니다. 차근차근 풀어보죠. 고려대가 내놓은 수시 2-2학기 일반 전형은 이름하여 학생부 전형입니다. 1단계 시험을 다른 부가 서류 없어 오로지 학생부만 보고 뽑습니다. 학생부 가운데 교과 성적을 900점, 비교과 성적을 100점으로 해서 1,000점 만점으로 평가를 합니다. 얼핏 보면 이른바 내신 성적이 90%나 반영되니까 고등학교 내신에 강한 학생들이 응시하면 유리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1차 합격자 발표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자기 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는 내신 1등급 학생들은 다 떨어지고 오히려 내신 2, 3등급, 심지어는 4등급 학생이 붙기도 했답니다. 학생과 학부모, 입시를 지도한 학교 선생님들까지 까무라칠만합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고려대가 속시원하게 성적 산출 방식을 공개하지 않으니 정확히 알 방법은 없습니다만, 지금까지 취재한 결과 대략적인 추정은 가능합니다. 우선은 흔히 K점수라고 말하는 변환 점수가 용의선상에 오릅니다. 고려대는 학생들이 각 학교에서 얻은 교과 점수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습니다. '보정'이라는 단계를 거치는데요, 표준편차의 표준편차를 구해서 원점수에 이 값을 반영해 변환치를 구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나 너무나 어려워 이름 있는 입시 전문가들도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모르더군요. 통계학자들만이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 문제를 어렵게 내서 평균이 낮고 편차가 큰 집단의 학생들은 점수가 크게 오르고 반대의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계고 학생들에게는 불리하고 특목고 학생에게는 유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내신 성적의 변별력을 높여주는 방법도 되기 때문에 무조건 비난하기도 애매한 상황입니다. 실제 지난해 교과부가 각 대학에게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라고 서슬 시퍼렇게 나설 때도 이 K점수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의 뒤죽박죽 당락의 주원인은 '기본 점수'에 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모든 대학이 각 전형 요소에 배점을 하면서 기본 점수라는 것을 줍니다. 예를 들어 학생부 교과 성적에 900점을 배정하고 거기에 기본 점수로 8백75점을 주는 것입니다. 그럼 실제 학생들 사이에 차이가 나는 점수는 최대 25점이죠. 반면 비교과 성적에 배점한 100점에는 기본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명목상으로는 교과 성적이 90%, 비교과 성적이 10%의 영향을 미치지만 실질적으로 교과 성적이 약 20%, 비교과 성적이 약 80%의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설사 내신이 2~3등급 떨어져도 비교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을 경우 역전 시킬 수도 있겠죠. 이번에 고려대에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비교과 성적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영어 인증 시험 성적(즉, 토플이나 토익 등이겠죠), 각종 경시대회 수상 실적, 학교 임원 경력 등등입니다. 학생부에도 이런 내용이 다 기재돼 있습니다. 각 요소에 어느 정도 가중치를 뒀는지 고려대 입학 관련자들만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특목고 학생들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내용인데요, 지난해에는 단계를 나누지 않고 학생부 성적(교과+비교과 성적)과 논술 시험 성적을 모두 합해서 한번에 뽑았는데 이때 썼던 가중치 상수를 이번에 논술이 제외된 1단계 전형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부 비교과 성적의 영향력이 고려대에서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커졌다는 설명입니다. 입학 전문가들이 그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이상합니다만….

고려대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고교에 등급을 둬서 차등 대우를 한 것이 아니라 각 전형 요소에 대해 일정한 가중치를 둬서 일률적으로 적용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고교 등급제를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또 특목고 학생들만 뽑힌 것처럼 얘기하는데 1차 합격자 가운데 외고는 15%쯤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나머지 대학들도 다 내신 성적에 기본 점수를 줘서 영향력을 줄이는 작업을 하는데 왜 고려대만 문제를 삼느냐는 호소도 합니다.

하지만 A고교 학생들에게는 10%의 가산점을 주고 B고교 학생에게는 5% 점수를 깎고 해야만 고교등급제 일까요? 앞서 상술했듯이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요소에 가중치를 잔뜩 줘서 많이 붙도록 하면 그건 고교등급제가 아닌가요? 실제 1차 시험 결과에 외고 학생이 15% 밖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혐의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외고 학생수는 전체 고등학생의 1.3%쯤 됩니다. 비율로 따졌을 때 10배가 훨씬 넘게 일반계고 학생들보다 많이 합격한 셈입니다. 사실 외고생 대부분이 이공계가 아닌 인문계에 지원하는 점을 고려할 경우 인문계열만 놓고 볼 때 외고가 일반계고의 20배 넘게 붙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기 고사를 본 것이 아니라 각 학교에서의 학생부 성적으로 뽑은 것이라면 비정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물론 다른 대학들, 특히 이른바 7공주라고 불리는 서울 유명 사립대들은 모두 기본 점수를 통해 내신 성적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시킵니다. 하지만 그래도 실질 반영률을 30~40% 선에서 유지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고려대는 실질 반영률이 20%쯤 된다고 핵심 관련자가 슬쩍 털어놓더군요. 타 대학에 비해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번 양보해서 대학 자율화 시대에 우리 학교에서는 영어 잘하고, 전교 회장이나 학급 회장을 한 리더쉽 있고, 여러 경시대회에서 상을 탈 만큼 경쟁력 있는 학생을 뽑고 싶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 학생이 학교 생활에 충실하고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성실히 수행한 학생들보다 더 우수하고 잠재력이 많은지 저는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여하튼 그렇다 하더라도 고려대는 어떤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 건지 수험생들에게 똑바로 인지 시켰어야 하죠. 무늬만 학생부 전형이라며 마치 내신 성적 좋은 학생을 우대하는 것처럼 꾸밀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신 성적은 20% 정도만 반영되고 나머지 어떤 어떤 요소를 갖춘 학생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어야 학생, 학부모, 학교에 이런 혼란과 당혹감, 배신감을 주지 않죠. 참여정부 시절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이려는 교육 당국의 지시를 회피하기 위해 쓰던 꼼수를 그대로 답습하는 이유가 뭔지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에게 있어서 고객은 학생과 학부모, 또 고교입니다. 고객을 이렇게 분노에 빠뜨리고 소위 장사가 잘 될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고려대는 이런 일선 고교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나요? '도대체 어떤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거니?'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