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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들 어깨에 위기 극복 달렸다

입력 : 2008.10.26 09:18


금융불안이 실물경제의 위기로 옮겨붙으면서 대기업과 은행으로 상징되는 대마(大馬)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년전 금융위기의 주범은 대마들이었다. 30대 대기업중 절반 이상이 방만한 차입경영에 골몰하다가 침몰했고, 이들 기업에 묻지마식 대출을 했던 대형 은행들은 문을 닫거나 흡수 합병의 비운을 맞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중소기업들이 무너졌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나앉았으며 나라는 곳간이 비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회생했다.

하지만 10년전 외환위기 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대기업들이 대부분 건전하고 은행들의 위험도 비교적 분산돼 있으며 나라 곳간에 2천400억달러가 쌓여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당시 500%가 넘었던 100대 대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00% 안팎이고, 수출 대기업들은 달러를 쌓아두고 있다. 대형은행들의 원화대출 연체비율도 1% 안팎에서 관리되고 있다.

이들 대기업과 은행이 이제는 자금 고갈로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서민들과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들이 혼자만 살려고 기업이나 가계대출을 경쟁적으로 회수하고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강건너 불보듯 한다면 결국 제발등 찍는 결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대마들의 생존 기반이 중소기업과 가계, 근로자들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뢰와 상생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일시적으로 달러와 원화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을 지원해 금융시스템을 복원함으로써 기업과 가계에 돈이 돌게 하고 은행과 대기업은 과감한 자구노력을 통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 기업들 위기를 기회로..상생 노력 절실

기업들은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최전선에 서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달러를 움켜지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고 일각에서는 기업은 물론 개인까지 나서 달러 사재기를 한다고 꼬집고 있다.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수출 대기업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분기 설비투자가 작년 동기 대비 0.7% 증가에 그친 만큼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도 높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을 개척해 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해외 생산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내수시장 확대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노력이 있어야만 내수를 지탱할 수 있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의 2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62.7%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9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곤두박질할 정도로 청년실업 문제가 심화되고 있지만 실제 대기업의 고용은 그다지 늘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은 나름대로 상생을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롯데그룹 8개 계열사가 지난 21일 중소 협력업체와 공정거래협약을 맺고 동반성장을 다짐한 것이 그 예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등에 이은 것이다.

협력방안에는 네트워크론을 통한 자금지원이나 납품대금의 현금성 결재 등이 들어가 있다. 함께 살자는 움직임인 셈이다.

환율 급등에 편승한 가격 인상을 우려하는 지적도 많다. 다만 일부 기업에선 가격을 동결하거나 원가 절감을 통해 오히려 내리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수가 어렵다 보니 비용을 줄여서 제품을 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과제는 노사화합이다. 올해 노사분규가 지난 8월까지 교섭단위와 사업장 단위로 각각 80건과 106건으로 전년 동기의 81건과 178건에 비해 감소했지만 난국 돌파를 위해서는 노사의 위기의식 공유와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급등한 만큼 임금인상 요구폭이 커지는 게 당연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자칫 공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 한 발짝씩 양보하는 성숙한 모습이 요구되는 시기라는 지적이다.

◇ 금융기관, 시스템 실패 예방 동참해야

최근 기획재정위원회 및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은행들이 지나치게 많은 단기외채를 끌어오고 부동산 담보대출에 치중한 것이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은행들은 담보대출을 늘려 덩치를 키우다가 규제가 강화되자 중소기업 대출로 방향을 틀었고 최근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동시에 발을 빼는 바람에 중기 대출은 지난 8월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빼앗는' 은행권 영업 행태에 기업들은 유동성 부족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게다가 은행들은 2004년 이후 본업인 예대업무(예금 유치와 대출) 보다는 펀드와 보험, 파생상품 판매를 통해 손쉽게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데 열중했다. 이 과정에서 펀드 불완전판매, 환율 급등에 따른 키코 피해기업 속출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정작 우리.SC제일.하나.신한.국민.씨티.외환 등 7개 시중은행은 2005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총 26조110억원(이익)을 벌었다. 이러한 단기 성과를 바탕으로 임원들에게 최대 20억원의 연봉을 지급하는 한편 직원들의 평균 연봉도 7천만∼9원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고 있다.

금융위기 발생으로 정부가 1천억 달러에 이르는 은행 대외채무의 지급보증에 나섰지만 정작 당사자인 은행권의 자구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유동성 부족으로 정부 보증까지 받게 됐지만 자신들이 보유 중인 해외자산을 매각하는데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시중은행 해외점포의 자산은 지난 6월 말 현재 외환은행 113억달러, 우리은행 110억달러, 신한은행 90억달러, 하나은행 46억달러, 국민은행 29억달러 등 총 388억달러에 달했다. 본점이 관리하는 해외자산도 150억달러에 이르지만 우리은행과 신한은행만 최근 4천800만달러의 자산을 매각하는데 그쳐 자구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은 "은행들이 이달 들어 매각한 해외자산은 5천만 달러 수준으로 해외 유가증권 보유액의 1%에도 못 미친다"면서 "은행들은 '매입시점 기준으로 볼 때 현재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선뜻 매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변명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번 금융위기에 중심에 서 있는 금융기관들도 개별기관의 이익보다는 시스템 실패 예방에 동참,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우려해야 하는 것은 시스템 실패"라면서 "금융기관들이 개별 이익만을 추구할 경우 당장은 괜찮지만 신용경색 지속, 기업 흑자도산 속출 등으로 이어져 결국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는 만큼 조금 손해보더라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