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됐는데 그동안 갈팡질팡 했던 장수들이 정책의 우선 순위를 놓치고 있는 양상입니다. 그리고 시장은 이를 간파해 불안함을 느끼고 '투매'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답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장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위기는 코스피 1000선이 무너진 증시도,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고분양가로
여기 저기 아파트를 지어놓은 뒤 미분양 사태와 자금경색을 맞아 고민하는 건설사들의 부실도 아닙니다.
문제는 여전히 지난 9월 '이제는 외환보유고 전쟁이다' 라는 글에서 걱정했던 외환보유고 부족과 이에따른 환율 급등입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팀은 외환 보유고 확충보다는 환율 급등을 더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증시부양책과 대폭적인 금리인하를 촉구하고 있는데다 부동산 거품만 더 키우게 될 건설사 지원책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밖에서 우리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외환보유고 문제에 혼신의 힘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마치 이 문제는 해결됐고 앞으로 다가올 경기 둔화에 대비한 내수부양책에 신경쓰는 분위기입니다. 급한 순간에는 우선 순위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데 부실 건설사도 살리고, 환율도 방어하고, 증시 급락도 막고, 은행 자금경색도 뚫어주고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까지 한꺼번에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를 만들고 외환위기 극복경험이 있는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만 외국 정상들 앞에서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한국이 걱정스럽다"고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봐야할 것은 지난 19일 우리 정부가 2009년 6월말까지 발생하는 1000억 달러 규모의 은행 대외 채무에 대해 3년간 보증하고 은행권에 3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한 '국제금융시장 안정대책'에도 원.달러 환율은 1424원까지 급등하고(아래 원.달러 환율 변화 추이 참조/자료:한국은행 ECOS), 한국의 국가부도 위험은 쿠테타 위기에 직면한 태국이나 IMF 구제금융을 눈 앞에 둔 헝가리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은 정부 관계자들이나 일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부정적 외신 보도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우리의 취약점이 반영된 결과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상대편 군대는 헤아릴 수 없는 대군(글로벌 금융위기)이고 우리 군사들의 숫자는 적습니다. 유일한 승리의 비책이라고는 협곡에 매복한 뒤 대군이 협곡에 완전히 진입할 때까지 기다려 한 번에 가지고 있는 화살(외환보유고)을 쏟아부어 몰살시키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황파악이 안 된 우리측 사령관(누군지 아시죠?)은 대군이 눈 앞에 보이자 마자 화살을 쏘아대도록 시킨 뒤 대군이 잠시 멈추자 다른 진영에 신경쓰다 다시 이들이 다가오니 이제 화살이 부족하다고 후방 보급부대(한국은행)에게 빨리 화살을 더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러는 사이 우리쪽 화살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적 대군은 물론 우리 군사들도 이런 사실을 눈치채며 불안해 하다 자기 살 길을 스스로 찾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왜 그런지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브라운 총리의 제안을 바탕으로 한 미국,유럽 등의 공동 대응으로 글로벌 신용경색이 잠시 주춤하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이 도는 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리보금리도 조금 하락했지만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글 '장기불황을 막아라'에서 설명드린 '헤지펀드 런'이 시작됐기때문입니다.
선진국 금융대책은 은행을 보호하는 것이지 헤지펀드는 아무런 보호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각종 파생상품과 CDS(부도위험을 사고 파는 파생상품) 등을 팔았던 헤지펀드는 결산시점인 10월말을 맞아 투자자들로부터 환매요구를 엄청나게 받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주려면 전 세계에 있는 자산을 팔거나 감당할 수 없으면 파산신청을 해야 합니다. 이미 300개 가까운 헤지펀드가 파산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증시나 부동산에 투자한 대부분의 외국 투자자들은 헤지펀드입니다. 수 백개가 넘는 헤지펀드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지금 주식을 내던지고 부동산을 팔고, 채권을 파는 이유는 한 자리에 모여 '작당'을 했다기 보다는 자신들이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머징 마켓 가운데 우리 증시가 연기금 등이 개입하면서 주식을 팔면 받아주고 있고 정부가 앞장서 "주가가 싸다"는 바닥론을 내세우며 부양책까지 내놓고 있어서 마음놓고 팔고 있는 양상입니다. 판 돈을 달러로 바꾸면서 환율 급등에도 영향을 주고 있죠.
더욱이 우리 외환보유고 규모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가 겉으로 이야기하는 것 만큼 높지 않습니다.
2008년 9월말 현재 우리 외환보유고 수준은 2397억 달러 인데 국내 은행과 해외은행 국내지점의 단기차입금은 1320억 달러입니다. 장기차입금까지 합치면 2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정부에서는 단기차입금 가운데는 해외은행 국내지점과 해외은행 본점 간의 거래도 있기때문에 이 부분은 제외해야 한다고 하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상황을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단기 차입금의 실제 채무자는 해외은행 국내지점이 아닙니다. 해외은행 국내지점은 단지 해외 본점에서 달러를 끌어와 이를 국내 기업에 대출해 주거나 부동산 투기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빌려 준 것입니다. 자신들도 돈이 급한 해외 본점이 기한이 돼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는데 국내 지점이 "우리 채무자들이 어려우니 연장해 주자"고 넘길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거죠. 결국 실제 우리 외환보유고 수준은 천 억달러 정도라는 건데 9월 이후 시장에 자주 개입했기때문에 천 억달러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인식입니다.
반면 외환 보유고를 확충할 수 있는 수출은 세계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미국과 유럽,일본,캐나다 등의 경기침체로 둔화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어 우리 경상수지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수입 물량을 늦추고 수출 물량을 당겨서 10월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한 번의 경상수지 흑자가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실정이 아닙니다. 실제로 IMF는 내년 우리 경제 성장률을 3%대로 낮췄고 무디스는 2.2%때까지 낮게 잡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선진국과 개도국까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거죠.
더욱이 우리는 가계 저축률이 3%로 거의 없다시피 한데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위험수준입니다. 은행은 예금으로 받은 돈 보다 대출로 나간 돈이 더 많은 현실입니다.
또, 우리 원·달러 환율 변동폭은 하반기 들어 국가부도를 맞은 아이슬란드 통화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엄청난 변동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금융 쓰나미'를 겪는 나라들이 대부분 빚으로 거품을 키웠던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해외 언론과 투자자들이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보는 '합당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1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확보한 외환보유고 1위에 우리보다 3배 가까운 경제 성장을 내년에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중국이나 외환보유고 2위 일본 증시 역시 폭락을 겪고 있고 외환보유고가 우리보다 많은 원자재 강국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상대적인 비교는 하지 않고 "우리 경제는 97년 외환 위기와는 다르다"고 강변하는 것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외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중일 금융펀드 조성'이 보기에 따라서는 일본과 중국의 외환보유고에 우리가 손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로 비출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국제 금융시장은 전 세계 실물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때문에 안전자산인 달러와 엔화에만 몰리고 있습니다. 원자재 조차 급락 위험때문에 돈이 몰리지 않습니다. 헤지펀드들의 '펀드 런'도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고 어쩌면 일시적인 거래 정지 사태까지 닥칠 수도 있습니다. 미국,유럽 등에서 시차를 두고 쏟아질 경제지표는 우려했던 것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증시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는 일들입니다.
달러나 엔처럼 국제 통화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통화를 갖고 있지 못한 우리는 이럴 때일 수록 대책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합니다. 국제금융 시장이 안정을 찾기 전까지 등락하는 증시나 환율에 일희일비하며 섣불리 대책을 내놓거나 거품을 키우게 될 건설사 지원책에 정부 재정을 축낼 때가 아닙니다.
오는 소나기는 맞으면서 일단 외환보유고를 확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전력한 뒤 국제금융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을 시점에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강력한 환율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실물경제에 대한 대책은 그 다음 수순이 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주가가 폭락하면 증시부양책을 내놓고 환율이 급등하면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는 '뒷북치기 대책' 으로는 외국자본의 이탈을 촉진시키며 외환보유고만 낭비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금융정책 책임자가 함부로 '바닥'을 이야기하는 성급함을 보일 때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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