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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못 쓰는 약

심영구

입력 : 2008.10.24 15:52|수정 : 2008.10.24 15:57

희귀병 치료제 공급, 해법은 뭘까.


-얼마 전 생일이 지난 선호는 이제 우리 나이로 20살, 성년입니다. 나이로는 스무 살 청년인데, 생김이나 지능은 5살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병원을 계속 오가긴 했지만 석 달전 입원한 뒤 아직 퇴원하지 못했고 한 달 전부터는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내려와 있습니다. 

-선호는 인공호흡기를 통해 숨을 쉬고, 위에 꽂아놓은 관을 통해 우유를 주입하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기도 안 조직이 계속 자라나고 있어 2월에도 절개 수술을 했지만, 점점 기도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숨쉬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래가 차오르면 호흡 곤란에 빠집니다. 그때마다 가래를 제거해주지 않으면 곧 사망입니다. 최근에도 호흡곤란으로 환자 5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면역력이 약해 가벼운 감기에 걸려도 폐렴으로 이어져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선호는 뮤코다당증 2형 환자입니다. 

-선호의 증세는 8살때부터 얼굴 모양이 변하면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뮤코다당증은 뮤코다당체 침착증, 또는 뮤코다당질 축적증이 원래 이름입니다. 유전 질환으로 선천적으로 대사 분해 효소가 부족해 체내에 뮤코다당(노폐물)이 분해되지 못하고 쌓이는 희귀병이라고 합니다. 성장할수록 뇌와 간이 손상되고 얼굴과 골격도 변하는데 5살쯤 얼굴 변화부터 외관상 증세가 나타납니다. 보통 10대 후반에서 20살 전후에 신체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사망하게 됩니다. 1형부터 6형까지 여러 종류가 있는데 2형은 발견한 학자 이름을 따 '헌터 증후군'이라고도 부릅니다.

-선호에겐 한 살 위 형 윤호가 있었습니다. 윤호는 선호보다 먼저 5살때부터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연년생 형제가 뮤코다당증 환자였습니다. 그리고 윤호는 2004년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면서 사망했습니다.   

-다운이는 선호보다 넉 달 정도 어립니다. 그래서 19살입니다.다운이는 10년 전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했고, 관을 통한 식사도 그만큼 오래됐습니다.다른 환자보다도 일찍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잘 버텨왔습니다.  




-다운이는 말을 못하지만 어머니 하경자 씨는 다운이를 '정 박사'라고 부릅니다. 어머니 표현대로면, 우리 정 박사는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의사표현은 손을 꽉 잡거나 놓지 않는 식으로 한다고 합니다.   

                 

-환자 곁에서 거의 떨어지는 일이 없는 어머니들이, 그리고 감염 우려 때문에 외출하는 일이 별로 없는 환자들까지 10월 17일까지 1주일 정도 건강보험공단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엘라프라제라는 약에 대해 건강보험공단과 미국 샤이어사의 대행사인 삼오제약이 약가협상을 벌였고, 17일은 협상 마감시한이었습니다.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이 엘라프라제는 뮤코다당증 2형 환자 치료제입니다. 3년전쯤 미국에서 개발됐습니다. 그리고 2년 전 미국 FDA 승인이 났습니다. 미국, 유럽, 캐나다, 멕시코, 일본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작년 봄부터 공급이 됐다고 합니다. 

-골수이식이나 효소 치료 방법이 뮤코다당증 치료에 쓰입니다. 1형 치료에는 골수이식도 많이 쓰입니다만, 2형 치료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최근에도 2형 환자 중에 골수이식을 받다 숨진 사례가 있다는군요.) 효소 치료는 결핍된 효소를 투여하는 방법인데 1형의 경우엔 5년 전쯤 치료제가 개발돼 국내에도 들어왔습니다. 2형은 치료제가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개발된 2형 치료제가 엘라프라제입니다. 

-미국에서 임상을 했을 때 96명의 2형 환자에게 엘라프라제를 투여해보니 보행능력이 현저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걸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죠.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환자 가족들은 희망을 갖게 됐고, 이 약이 국내에 출시되기만을 기다려왔던 거죠. 

-그런데 미 FDA 승인이 났고, 다른 나라에 공급도 됐는데 아직도 한국에서는 이 약을 살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는 다시 신약 개발 뒤 국내 공급되기까지 절차를 짚어봐야합니다.간단히 적어보겠습니다. 엘라프라제 같은 희귀병 환자를 위한 신약은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개별 환자에겐 반드시 필요한 약입니다. 그래서 식약청에서는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습니다.(그전에 여느 수입약처럼 수입허가, 안전성, 유효성 평가를 거쳐야합니다.)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이 약을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해 건강보험으로 지원할 것인지를 평가했습니다. 목록 등재도 결정됐습니다. 이제는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측이 약값을 얼마로 할 것인지 협상을 벌입니다. 4차에 걸친 협상이 진행됐고 양측의 가격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10월 17일 협상 마감시한이 지나버렸습니다. 협상이 결렬된 것입니다. 

-앞서 적은 환자가족의 시위는 협상 마감시한을 앞두고 빨리 협상을 타결해 약 공급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에게도 이런 내용을 알리려는 것이었지요.

 -환자 단체들은 건강보험공단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해서 협상 타결이 안되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한시라도 급한 환자들을 생각해서 협상을 빨리 끝내 약이 공급돼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건보공단, 그리고 보건의료 시민단체의 입장은 좀 다릅니다. 성급히 협상을 진행하다가 다국적 제약사가 원하는대로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협상이 바로 타결되지 않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약값을 낮추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2006년말 발표된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따라 2007년부터 약가 협상제도가 마련됐습니다.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우선 약을 등재하고 안되는 약을 제외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에서, 건강보험 지원을 해야하는 약만 등재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바뀐 덕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포스트( ☞ 약값의 진실은?)를 참조해주세요.)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시판 중인 엘라프라제의 가격은 1바이알에 3백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바이알은 주사 한 번 맞을 분량입니다.) 제약사측은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더 많이 받아야겠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건보공단에서 제시한 가격은 이보다 백만 원정도 싼 듯합니다.(정확한 가격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측 가격차가 크기 때문에 이후 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서도 조정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강제조정 결정이 내려져도 문제는 남습니다.

                      

-에이즈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를 위한 2차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은 2004년 1병에 2만 5천원정도로 보험 약값이 정해졌는데 푸제온의 판매권을 갖고 있는 로슈사는 약값이 너무 싸다며 4년째 공급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에서는 인권위에 제소도 하고, 국제 단체들과 연대해 공동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로슈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에 요구했던 약값보다는 조금 낮춰서 다시 협상을 하고 있는데 협상은 계속 결렬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스프라이셀 협상 때도 그랬습니다만, 우려되는 지점은 엘라프라제 약값에 대해 강제조정이 이뤄져도 제약사가 배째라며 공급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푸제온처럼 무한정 공급이 늘어질 수 있습니다. 엘라프라제의 특허기간 20년(혹은 그 이상)이 만료될 때까지요. 다운이나 선호나 그때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테지요.

                  

-현재 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강제실시권' 발동입니다.

                  

지금처럼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정부가 강제실시를 하게 되면, 특허권을 양도받아 특허기간이 만료되지 않아도 국내에서 엘라프라제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작년엔 태국에서 강제실시권을 행사해 또다른 에이즈 치료제를 자국 내에 공급했다고 하고,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인도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고 하네요. 국내 시민단체에서도 푸제온의 특허권에 대해 특허청에 강제실시권 청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이외에 다른 방법들도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성이 없어보이네요.)

 -선호와 다운이, 그외 여러 환자들에게 시간이 없는데 절차는 더디고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의약품 접근권에 대한 문제, 큰 짐이 되어 머리와 가슴 속에 자리잡습니다.  

***선호나 다운이 어머니는 인터뷰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선호 어머니는 4년 전 치료제가 없어 첫째 윤호를 떠나보냈는데 이제는 치료제가 있는데도 한 번 맞아보지도 못한 채 선호도 보내야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긴 글, 두 어머니의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큰애 같은 경우는 약이 없었으니까, 무한정으로 기다리다 죽게했는데. 지금은 약이 나온 상태에서 (선호를) 보내야 되니까 한번이라도 맞히고 보냈으면 좋겠어요, 지금 심정은. 하나 보내서 너무 지금 슬퍼할 겨를도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 (큰애 죽은지) 4년째 돌아오는데 얘까지 그러니까 한번만이라도 좀 맞게, 맞아보고 얘를 보냈으면 원이 없고 그럴것 같아요. 약이 없으면 몰라도, 또 나왔으니까. 얘까지 약 한 번도 못 맞고 보낸다면은 진짜 너무 저기할꺼 같애요."   

                   

"돈 많은 부모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미국 이라도 보냈으면. 일본 대만이라도 보냈으면 이러지 않았겠지. 일본도 맞고. 대만도 맞고. 근데, 우리나라만 못 맞고. 약은 들어오려고 생각도 안하고. 언제 주실건지 물어보고 싶어요.  내가 정말 이럴 때는 그런 거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대통령님의 사돈에 팔촌이라도 됐으면, 아니면 보건복지부장관의 먼 핏줄 이라도 됐었으면, 보험공단의 이사장이 돼가지고 누구라도 되었으면 하는 그마음. 일인 시위하면서. 잘 되겠지요. 잘 되겠지요. 했던 그 믿음이 점점 사라질 때.

애가 나보다 먼저 가줬으면 좋겠고 내 앞에 하루라도 나보다 하루만 먼저 가주었으면 좋겠고. 내 앞에 1초만 먼저 가줘 그랬는데. 그랬다가도. 엄마 20년 동안 한 게 너무 없으니까. 엄마 열흘만 더 살다 가면 안될까? 너보다 열흘만 더 살다 가고 싶다. 근데 지금 이렇게 너무 힘드니까 숨 멎는 거 보는 순간 갔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그 이상은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 아니면 빨리 약이 왔으면 좋겠어요. 빨리 해결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다운이 봤으면, 중환자실 있는 선호 봤으면 한 번이라도 봤으면 바로 해결할텐데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어요."  

 

[편집자주] 2003년에 SBS에 입사한 심영구 기자는 사회1부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참 넓고 깊고 복잡하고 중요한 분야'라면서 건강하게 오래사는데 도움이 되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합니다. 사내커플로 결혼한 심 기자는 부부가 방송 기자로 활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