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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친해졌는데, 기러기 아빠라니.. '오, 노!'

이민주

입력 : 2008.10.21 14:18|수정 : 2008.10.21 16:06

학교를 즐기는 아이…'한국' 학부형의 고민


*초등학교 교실. 반 정원이 18명 가량이고 교실 곳곳에 푹신한 소파가 있어 편안한 자세로 수시로 독서.

어머니와 저, 아들 3대로 구성된 제 카이로 식구 가운데 이 곳 생활을 가장 즐기는 축은 올해 12살 난 아들 녀석입니다.

한국에서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학원, 과외 순례에 늘 지쳐 있다 이 곳에서 미국학교에 다니며 물 만난 고기마냥 활개치며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집 근처에 있는 CAC (Cairo American College)라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데 모아놓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8월에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가정통신문이 날아 왔습니다.  

내용은 제 상상과 정반대였습니다.

*잠을 9시간 이상 충분히 재워라.

*공부로 스트레스 받지 말게 하라.  

*가정에서 학과 공부는 한 시간 이상 시키지 마라.

*대신 책을 많이 읽게 하되 (가급적 부모도 함께) 모국어로 된 책을 영어책과 동일한 시간 읽게 하라.

이따금씩 아들에게 물어보니 수업도 꽤나 느슨하게 진행되고 숙제도 아예 없는 날이 절반, 있는 날도 하루 30분이면 모두 끝낼 수 있는 분량입니다.

물론 시험도 없습니다.

대신 방과후 활동이 활발합니다. 1인당 3개까지 선택하게 하는데 아들은 <연극>과 <보드게임>, 그리고 <수학 & 과학 재미있게 공부하는 법>을 선택해 매일 오후를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축구와 야구 리그를 조직해 팀별로 리그전을 치릅니다.

정식 유니폼도 지급하고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코치를 맡아 제법 그럴듯한 전술도 구사해 아들 녀석은 주말마다 축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천연잔디 구장에서 주말마다 리그전을 치르는 아이들. 승패와 실력에 관계없이 고루 뛰게하는 게 원칙*

늘 밝은 표정에 학교 생활을 즐기는 아들을 볼 때면 저 역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때로는 이렇게 방목하다 귀국하면 3년동안 스파르타식으로 단련된 또래들에게 치여 고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때는 이렇게 공부에 스트레지 받지 않고 다양한 취미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게 길게 보면 분명 나을 거란 믿음이 아직까지는 더 강합니다.

한가지 걱정은 서울의 학생 노릇을 지긋지긋하게 경험한 아들이 귀국할 때쯤 잔류 선언이나 영어권 유학을 고집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바쁜 핑계로 한국에서는 애비 노릇 제대로 못하다 이곳에 와 부쩍 아들과 친해진 터라 몇 년씩 혹은 아예 나머지 인생 대부분을 아들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 신세는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편집자주]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종군기자 가운데 한사람인 이민주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스포츠,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오랜 중동지역 취재경험과 연수 경력으로 2001년 아프간전 당시에는 미항모 키티호크 동승취재, 2003년 이라크전 때는 바그다드 현지취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