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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법 이후의 위기 ②

정명원

입력 : 2008.10.06 17:28|수정 : 2010.01.06 14:51

-경기침체의 전염


 "미국 현지에서 체감되는 실물경제는 이제 겨우 터널의 시작이다라는 느낌입니다. 상업용부동산을 관리하고 있는데 지난 10여년간 vacancy가 없었는데 건물마다 빈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하네요. 살인적인 렌트비를 내면서 살아 남을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려는지.. 이제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면서 이들은 조만간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아 있는건 파산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사람들이 꽤 생겨날 겁니다."

제 블로그를 자주 들러주시는 미국 교포 분의 말씀입니다. 미국 현지에서 상업용 부동산을 오랫동안 관리해 오셨다는데 주변 미국인들이 속속 파산 위기에 닥치는 현실을 가까이서 보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deleverage effect'(역지렛대 현상)라고 합니다.

빚을 내서 자산을 사면 적은 돈으로 부동산이나 주식을 살 수 있죠. 호황일 때는 오히려 자기 돈은 적게 들여 이익을 얻는 leverage(지렛대)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이 지렛대가 반대로도 작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기 침체가 닥쳐오고 더 이상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샀던 자산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너도나도 물건을 내놓기 때문에 자산 가격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거죠. 이것이 'deleverage effect'(역 지렛대 현상)입니다.

미국 부동산 시장 뿐 아니라 금융 시장에서 신용경색과 맞물려 채권금리가 뛰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이고 우리 나라 버블 세븐 지역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며 급매물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파산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부동산 임대업 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경기침체와 불황을 구분하는 방법은 "이웃이 해고를 당하면 경기침체고 내가 해고를 당하면 불황이다" 라는 '명언'이 있듯이 최근 통계를 보면 미국 고용시장 상황은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빌려 온 미래에셋 증권 애널리스트의 말 처럼 미 고용지표 악화와 실물경제 부진이 새로운 뉴스는 아니지만 이번 9월 실업 통계는 여러 가지 점에서 심각한 측면이 많습니다. 우선 8월말만 해도 1만6천 명이었던 서비스 업 분야의 해고자 숫자가 9월에는 8배 가까이 증가해 8만2천 명을 넘었습니다. 리만 브라더스 등을 비롯해 금융권의 해고자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통계에 잡히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비스업 부문은 미국 고용의 85% 가까이를 차지하는 분야입니다. 그만큼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거죠.

9월 비농업인구 감원 규모도 15만9천 명으로 닷컴 버블 이후였던 2003년 3월 이후 최대 규모이고, 9월 실업률은 6.1%로 8월과 같았지만 아예 일자리 찾는 것을 단념한 노동자를 포함할 경우 11%로 8월보다 증가했습니다.

몇 차례 설명을 했지만 미국 경제에서 고용통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난 6년 동안 낮은 이자 속에 빚을 내며 살면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와 카드 빚, 자동차 대출 등에 빠져 있는 미국 가계의 저축률이 0% 이기때문입니다. 저축해 둔 돈이 없는데 일자리도 잘리면 소비는 커녕 빚에 대한 이자를 갚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특히 미국 경제는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가 넘습니다.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살면서도 세계 경제에서 우리 나라나 중국, 일본 등이 수출한 물건을 열심히 사주고 있었던 거죠.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수준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중국이나 인도,브라질,한국 등이 수출한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세계 경제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된다는 점에서 실질적 비중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 나라의 수출 대상국이 중국, 중동, 유럽 등으로 다변화돼 있고 미국의 비중이 10%대로 떨어졌다며 이른바 '디커플링'을 이야기하지만 미국의 경기침체가 이렇게 심각한 수준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품목 가운데 80%가 중간재이고 중국은 이 중간재로 물건을 만들어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구조이기때문이죠. 유럽과 일본은 이미 경기침체에 가까워졌고 이제 미국마저 심각한 불황에 빠지면 물건을 만들어도 사 줄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수출 주력 상품인 반도체, 자동차 등이 주로 선진국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미국 소비 위축이 줄 파장은 만만치 않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금융업종은 물론 다른 업종에서도 해고자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습니다.

미 뉴욕대 경제사 학자인 리차드 실라 교수로부터 1907년 J.P 모건이 그랬듯이 투자라기 보다는 '애국' 차원에서 투자하고 있다는 워런 버핏도 평생 처음 본 상황이라며 긴장하고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장기투자에 대한 믿음과 국익차원'에서 지금 GE와 골드만 삭스에 돈을 지원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당분간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금융시장 경색이 미국 경제의 피를 빨아 먹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했던 부시 대통령과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냐 경기둔화냐를 논쟁하던 전문가들도 지금은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를 넘어 불황으로 갈 수 있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10년 동안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식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2년 정도 지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냐를 놓고 파격적인 조치, 즉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동시에 금리를 1%씩 낮춰야 한다", "아일랜드처럼 일정 기간 정부가 금융기관의 자산과 부채를 보장해 신뢰를 회복한 뒤 선별 구제해야 한다" 등을 내놓지 않으면 장기불황일 수 있다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대 통신 기업 AT&T가 돈을 못 구해 하루짜리 단기차입금에 의존하고 있고 대부분의 중소 기업들은 어음만기 연장을 못해 투자는 커녕 종업원 임금을 줄 수도 없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구제금융법 통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은행 예금에 대한 보험공사의 보장이 63%(2분기 현재 7조 360억 달러 중 4조4천62억 달러)에 불과해 '소리없는 뱅크 런'이 계속 일어나며 금융시장의 돈 줄이 마르는 상황이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당장 70억 달러가 없으면 공무원들 월급을 주지 못하고 해고를 시켜야 한다며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재무책임자는 빌 게이츠에게 전화까지 걸었다고 합니다. 구제금융법에 담긴 대책이 적용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미국 기업들은 하루 버티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현실인 거죠.

세계 경제의 최종 거대 소비자 미국이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유럽, 일본이 경기침체에 접어들면서 이제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브라질 등 수출국들에게도 조만간 경기침체가 전염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도 내년 2분기는 돼야 미국이 최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지만 그것도 대선 이후 새 정부가 제2,3의 뉴딜을 내놓을 때야 가능할 전망입니다. 

심상치 않은 겨울을 버티려면 "위기는 기회다.하면 된다" 라는 식의 슬로건이나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우리 정부의 자문위원인 기소르망 교수로부터 너무 장미 빛 전망이어서 "경제전망과 샤머니즘의 중간쯤에 위치한 수준" 이라는 '모욕'을 당할 정도의 미래 계획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정부 곳간을 채우고 위기 의식을 공유하며 국민의 힘을 한 곳에 모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