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세대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최악의 금융위기가 발발했습니다. 그것도 세계경제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가 그 진앙이다 보니, 지난 30여년간 구축된 신자유주의 아래 허물어진 시장의 국경은 각국에 전해지는 충격의 정도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원칙과 중심, 실력, 방향에서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여 주고 있는 정부 경제 정책의 혼란이 가계와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경제활동의 가장 큰 적이라는 '불확실성'을 있는 대로 키우며 나라를 휘청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930년대를 휩쓴 대공황과 이의 극복을 위한 세계대전의 씨악을 뿌린 1929년 대폭락 이후 최악이라는 이번 위기를 진단하는 데 있어 그저 일부 시장 참여자들의 문제로, 그리고 일부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의 근원인것처럼 치환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지금은 불확실성이 극대화됐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루비니나 엔디 시에,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월가의 금융시스템과 미국 경제의 취약성이 맞물린 이번 사태를 아주 '확실'하게 예언해 왔습니다. 이제는 월가의 혼돈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차분히 짚어 봐야 할 것 같은 데, 여기저기서 많이들 다루고 있는 경제 영역에서의 문제들은 일단 좀 뒤로 미루고자 합니다.
저는 붕괴할 수 밖에 없는 달러패권, 그리고 새 정부들어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외교정책의 현실을 한번 짚어 보려 합니다.
지난 5일 자 홍콩 명보는 중국이 미국채 2천억 달러 어치를 매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의 채권을 무더기로 매입한다(?)...원칙적으로 보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행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이라크 전쟁비용 감당을 포함한 국내 경기 유지를 위해 미국이 그동안 국채 발행을 남발하면서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등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미 국채는 이미 심각한 수급불균형 상태에 빠져들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중국은 달러 채권을 무더기로 사들인 걸까요? 잘 뜯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중국의 미 국채 매입 결정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돼 온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1조 8천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달러값이 계속 떨어지게 되면 막대한 외환보유고에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이 발생하면서 앉아서 손실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미국의 달러화가치 하락은 지속적으로 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위안화 가치 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이럴 경우, 중국의 최대수출 시장인 미국의 내수위축으로 인한 타격은 물론 수출단가 인상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타격, 그로 인한 경기 경착륙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의 미 국채 추가 매입 결정에는 이런 경제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22일 부시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후진타오 주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당시 대다수의 한국언론들은 북한의 핵 불능화 중단 조치에 대한 우려 표명과 6자 회담 차원의 협력을 얘기했다는 내용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부시에게 더 급한 것은 대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던 금융시장의 붕괴를 차단하는 일이었고 이 과정에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고 이해를 얻어내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 정상차원의 협조 요청이 효과를 발휘한 데다, 일단은 달러패권 붕괴를 막아야 하는 데도 미-중 양국의 이해가 통했다는 점에서 이번 중국의 미 국채 매입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경제적 요인 외에 이번 중국의 국채매입을 보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완전히 끝나가는 하나의 증거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구 소련의 붕괴이후 WTO 체제 확산등과 맞물려 신흥시장에 자신들의 규범을 강요하듯 밀어부치며 시장을 개방하면서 달러패권을 확산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신흥시장에서의 금융투자소득을 비롯한 외부자산의 미국내 유입을 바탕으로 빚더미의 경제체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며 패권을 유지해 온 거죠..
사실 감당하기 힘든 쌍둥이 적자 속에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최상등급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기축통화에 대한 무제한의 발권력을 지니고 있는 것 말고는 어떤 요인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 빚더미에 갇힌 미국인들에게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권력을 동원할 경우, 이는 저성장속 고물가라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들어 내게 될 상황입니다. 그래서 최근의 구제금융법안이 도덕적 해이 외에 위기를 지연시키는 역효과만 낼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나오는 겁니다.
결국 달러패권을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의 붕괴 위기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에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은 사실 지난 수십년동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달러패권이 급속히 힘을 잃으면서 일극체제의 붕괴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다극체제가 형성되고 있는 평가가 나올 만한 상황입니다. 아니 이미 이번 금융위기의 수습과정은 이미 다극체제가 시직됐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이 일단은 자신이 보유한 달러자산가치 손실과 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한 미 국채 매입을 결정했지만 이것이 중국의 대외 경제정책의 방향과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달러패권 붕괴의 속도 조절에 나섰다고 하는 게 오히려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속내를 좀 더 적절히 알 수 있는 보도가 있습니다.
지난 1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설을 보면 '세계가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금융질서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해 미국의 시장 감독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음이 분명해졌고, 다양한 환율, 금융시스템,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공정한 금융질서를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사설을 두고 미국 경제 시스템에 대한 단순한 불신을 넘어 중국이 새롭게 중장기적인 세계 금융질서 재편과정에 적극적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대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하루 이틀 새 달러패권이 무너지는 극심한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달러패권의 이후를 내다보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수면 아래서, 수면 위에서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층 가속화된 달러패권의 붕괴 흐름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영향력과 직결돼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미국의 중동정책등 대외정책의 골간이 결국인 달러패권에 기초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미국적 경제,금융시스템을 지켜 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시장경제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지고지순한 것 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국익을 위해 가장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시장 자유, 금융개혁'이라는 목소리를 앞세워 신흥시장을 장악해 온 미국의 행태를 보면 이를 곧이 믿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경제의 현자, 캐네스 갤브레이스 교수는 이런 미국 경제와 체제를 'INNOCENT FRAUD', 즉 '처벌받지 않는 사기'라고 명명하기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미국의 위기를 보고도 그 시스템을 더 확산시켜한다고 금융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경제적 측면이나 이미 다양한 축과 다양한 이해에 기반한 중심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집스럽게 한미동맹을 지고지순한 가치로 고집하고 있는 외교정책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오히려 위태롭게 하지 않을 지 너무도 걱정스럽습니다.
새 정부들어 한미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시켰고, 그 내용에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이라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붕괴하는 '달러패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미국적 전략과 가치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강요될 수 있는 것인지,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인지 이 정부의 외교정책 담당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올해 들어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4강 외교 과정은 과도하게 의미가 부여된 한미동맹이 우리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방중에 때맞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동맹을 낡은 시절의 군사동맹으로 일갈(一喝) 했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 전략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4강 외교의 후순위로 쳐져 있고 협력의 범위 역시 자원과 경제 등에 치우쳐 돈이나 벌면 된다는 식의 한국의 속물적 근성을 무한대로 노출시키며 대미일극외교의 한계와 위험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한반도 주변의 역학 관계에 비춰 대미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생존전략과 미국의 국제전략 사이의 충돌지점과 접합지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아니 그걸 해 보려는 최소한의 전략적 고려도 없어 보이는 정부의 맹목적 대미 외교전략은 그 의도와는 달리 우리의 운명에 위태로운 주사위를 던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입니다. 특히 붕괴하는 달러패권 속에 급변하는 세계정세가 펼쳐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이런 걱정을 더 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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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정치부에서 외교부를 맡고 있는 윤창현 기자는 1996년 SBS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아침뉴스인 '모닝와이드' 경제코너에서 오랫동안 시청자들을 만났습니다. 시사고발프로인 '뉴스추적'에서는 우리 법조계의 문제점을 심도있게 파헤친 <전직교수 김명호..그는 왜 법을 쐈나?>편으로 2007년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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