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구제금융법안 처리를 둘러싼 진통으로 미국, 유럽 증시 등이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는 반면 우리 증시는 중국 정부의 증시부양책 발표로 인한 중국 증시 상승과 금융위의 공매도 규제로 외국인들이 매도세를 주춤하면서 반등을 하는 양상입니다.
망각이 빠른 증시 분위기때문에 "이제 큰 위기는 지난 것 아니냐"는 일부 낙관적인 전망까지 나오지만 아직은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발표된 미국 주택시장 지표는 여전히 예상치보다 떨어져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고, 페니매와 프래디 맥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6%대로 떨어졌던 모기지 금리도 7%로 다시 올랐습니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은행끼리 돈을 주고 받는 기준이 되는 미 재무부 3개월 만기 채권과 리보금리와의 차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미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는 주택시장은 지금도 암울한 상황이고 금융시장에서는 '신뢰의 붕괴'로 인한 자금경색이 변함없이 심각하다는 거죠.
이번 주말 쯤 타결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구제금융법안이 의회에서 가닥이 잡히면 좀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구제금융법안을 둘러싼 폴슨 미 재무장관-버냉키 FRB 의장의 견해와 미 의회-주요 경제학자들의 견해에는 현 위기 상황 진단에 대한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폴슨-버냉키는 '돈이 있어도 돌지 않는 유동성의 위기'를 당장 잡아야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7천억 달러 백지수표'를 당장 달라고 요구하는 거죠.
반면, 미 의회-주요 경제학자들은 폴슨-버냉키의 '뺨 때리기 이론(Slap-in-the face theory:얼이 빠져 유동성 위기가 올 때 돈을 풀어 다시 정신차리게 하는 것)'은 원인이 심리적일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지금처럼 주택시장 부실과 그 부실을 상품화한 파생상품이 곳곳에 퍼져 규모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책의 무게를 '당장'이라는 시기보다 정부의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것만큼 지원받는 금융기관들의 책임과 주택담보대출 부담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자금집행에 대한 감시 기능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특히 정확한 가격 책정이 어려운 '역경매' 방식보다는 정부가 지원한 돈만큼을 '우선주' 형태로 받아 주주의 권한으로 금융기관 임원들의 과도한 보너스 잔치를 막고 주택담보대출자에 대한 탕감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둘 가운데 후자 쪽이 사태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어떤 안이 됐든 아니면 중재안이 됐든 타결 이후 우리 경제에 미칠 가장 중요한 여파는 환율이 될 것입니다.
가닥이 잡히면 세계적으로 대형 금융사 뿐 아니라 수많은 헤지펀드, 소규모 은행들까지도 지금보다 더 본격적으로 자금 확보를 시작할 것이고 쓰러지는 회사들이 속출하는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말해 그동안 자신들이 투자했던 자산들을 팔아 달러를 확보하는 행보가 빨라진다는 겁니다. 주식시장과 달리 외환시장이 지금도 '달러수요' 때문에 연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시장 세력들의 달러 확보 싸움때문입니다.
미 정부조차 전체 부실규모가 얼마인지를 가늠하지 못한 채 '7천억 달러' 안에서 막아보겠다고 할 정도로 연쇄 부도의 파장을 알기 힘든 실정인 만큼 우리처럼 외환시장이 거의 개방된 나라에서는 무조건 외환보유고를 늘려놓는 방법이 거의 유일한 위기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카드가 점점 줄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환보유고를 늘리려면 수출이 늘거나 우리나라 국채나 우량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호기롭게 나섰던 외평채 발행은 현 국제금융 상황에 대한 '우리의 무지'만 확인한 채 돌아왔고 지금 다시 발행하려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 가산금리를 줘야하는 실정이라 선뜻 나설 수도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국제금융시장 경색은 초우량 기업도 채권을 팔아 달러를 확보하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 경제를 더 받치고 있는 수출에도 '빨간 불'이 들어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7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 증가율을 보였던 수출은 8월에는 18.7%로 줄었고 9월에는 10% 초반 때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달러를 더 못 벌어오게 됐다는 건데 반면 원유도입단가는 유가 하락에도 별로 떨어지지 않아 무역적자는 계속 규모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결국 세계 각 국이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한 전쟁을 시작하게 될 텐데 우리로서는 새로 달러를 쌓아놓을 수 있는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으니 '있는 외환보유고'라도 잘 지켜 언제 올 지 모를 '더 큰 위기'를 대비해야합니다.
혹시라도 우리 경제팀이 현 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 끝난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 번 처럼 섣불리 외환보유고를 풀어 인위적인 환율 개입에 나선다면 그때는 전쟁을 앞두고 실탄을 낭비하는 군대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 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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