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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과 배고픔에 '멍∼' 라마단, 약인가 독인가

이민주

입력 : 2008.09.26 10:12|수정 : 2008.10.15 01:27


지난 2004년 요르단 연수시절 라마단을 겪은 뒤 올해 두번째 이슬람 금식월을 지내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이전 글에서 소개해 드린대로 라마단 기간은 무슬림들에겐 육체적, 정신적 수련을 통해서 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편리함과 효율을 추구하는데 길들여진 이방인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대목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라마단 기간중에는 도무지 일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만 해도 다른 글에서 토로한 대로 촬영을 하려면 이집트 당국의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하는데 9월 한달 동안은 담당자와 메일 교환은 물론 전화 한 통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프레스센터의 외신 방송담당은 달랑 한 명인데 출근 시간이 일정치 않을 뿐 아니라 도대체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는 언제나 불통이고 다른 사람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면 나중에 연락하라는 말만 돌아옵니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상상키 어려운 일이지만 무슬림들에게는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닌 모양입니다. 약간 심하게 표현하자면,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해 있는 동안 목마름과 배고픔을 참아내는 것만으로도 자기 할 도리를 다 한다는 태도인 듯 합니다.

이 곳에서 사업체를 꾸려가고 있는 지,상사 책임자나 교민들에게 라마단 기간중 업무 효율에 관해 물으면 고개부터 절래절래 흔듭니다. 가뜩이나 한 달 동안 업무시간을 2~3시간 단축하는데 근무시간에도 현지인 직원들은 늘 졸음과 배고픔에 흐리멍텅한 상태이다 보니 업무효율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라마단 기간중 무슬림들의 일과는 오전 10시쯤 출근해 오후 3시에 일과를 마치고 귀가해 해가 떨어지길 기다려 1차로 음식을 먹고 가족, 친지, 이웃들과 얘기 꽃을 피우며 밤 10시쯤 또 한차례 거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곤 잠깐 눈을 붙이거나 아예 밤을 새운 뒤 새벽 2,3시쯤 다시 배를 채우고 해 뜨기 전 예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해 지고 난 직후부터 이튿날 해 뜨기 전까지 세 끼를 챙겨 먹느라 잠은 길어야 서너 시간을 잘 뿐이니 일터에 나오면 멍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대부분 골초인 아랍인들이 니코틴의 유혹을 참아내야 하는 점도 일에 대한 집중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작용합니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뽑았던 칼도 칼집에 집어 넣는다' 말이 있을 정도로, 하던 싸움도 멈추고 덕담만 주고 받는 '신성한 달', '평화의 달'이 본래 취지입니다. 하지만 아프간전, 이라크전 이후엔 이런 정신이 크게 퇴색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올해는 라마단 기간 동안 폭탄 테러나 납치, 교전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인명이 희생됐습니다.

금식하라는 신의 명령은 고통과 비능률을 감수하고도 열심히 지키는 무슬림들이 정작 평화롭게 지내라는 보다 큰 대의는 소홀히 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로 비쳐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라마단 기간중에까지 무슬림들이 저항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만든 책임이 더 크다고 하면 할 말은 궁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만...)

  [편집자주]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종군기자 가운데 한사람인 이민주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스포츠,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오랜 중동지역 취재경험과 연수 경력으로 2001년 아프간전 당시에는 미항모 키티호크 동승취재, 2003년 이라크전 때는 바그다드 현지취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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