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번에는 전편에서 얘기했던 대로 '세(勢)'의 본질과 흐름을 한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정치에서 '세'를 구성하거나 유지하는 요인 또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흔히 두 가지를 꼽습니다. 하나는 '돈'이요, 다른 하나는 '공천'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과거 보스 정치에 있어 정치적 실세는 돈줄과 공천권을 쥐고 있습니다. 정치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만큼 보스는 자신을 따르는 인사들에게 수시로 '자금'을 공급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 공천은 정치인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것인 만큼 공천권을 쥐고 있으면 당연히 의원들이 그 보스를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3김 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이런 구태 정치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자금에 관한 법규나 사회적 감시가 심해지고 국민들의 정치의식도 많이 성장하면서 돈줄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는 세를 얻을 수 없게 됐습니다. 만일 돈줄이 세가 된다면 18대 국회도 막대한 부를 쥐고 있는 의원들이 세를 얻어야겠지요. 그러나 공천권은 사정이 다릅니다. 지난 17대 국회 때는 지역 경선 등 아래로부터의 공천실험이 다양하게 시도되면서 이런 공천권에 의한 계보정치 또는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8대 국회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외부 인사들을 공천심사위원으로 영입하면서 과거와 같은 밀실 공천은 많이 사라졌다고 하나 공천심사위가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하면서 공천심사위를 놓고 권력 구심축간에 충돌이 표출되기도 했던 겁니다. 한나라당에서 공천과정을 놓고 친박 인사들이 대거 탈당했던 사태와 4월 총선에서 친박연대가 뜻밖의 성과를 거두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분명 공천권은 아직까지도 정치권에서 가장 강력한 세 구축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만을 놓고 얘기하자면, 친이상득계니, 친이재오계니, 친박근혜계니 하는 것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명 공천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사들이 그 중심점에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전편에서 말했듯, 홍준표 원내대표는 공천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원내대표가 되고 나서부터는 공천과 다른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습니다. 바로 상임위원장이나 상임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국회직에 대한 인사권이 그것입니다. 홍 원내대표의 최대 전성기는 어쩌면 원구성때 였을 겁니다. 전편에서 말했듯 홍 원내대표의 '세가 없다'는 발언이 사실일수도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은 이 부분에서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한마디로 그런 권한이 한시적이라는 겁니다. 이미 원구성도 끝났고, 또 원내대표로서 임기도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임기내에는 의원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세 구축은 매우 한시적이고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얘기가 다릅니다. 비록 지금은 아무런 직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현직 의원들이나 잠재적 의원 후보들이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부인하건 안하건 말이죠.
자.. 그럼 세의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듯 합니다. 흔히 한나라당에 계파를 얘기할 경우 친이계 (보다 세분하면, 친SD계, 친이재오계, 정두언계, 홍준표 등 신실세 등)와 친박계로 구분합니다. 최근 일부 기사를 통해 '친이계가 흔들린다'느니 '친박계가 세를 키운다'는 등의 얘기를 보거나 들었을 겁니다. 일부 친이계 의원들이 친박계로 전향했느니 하는 소문도 정치권에서 돌고 있습니다. 본인들에게 확인 취재를 하면 펄쩍 뛰거나 노발대발합니다. 또 일부는 불가피성을 들어가며 간접 시인하기도 합니다.
앞서 현 18대 국회 세 구축의 중심에 서려면 돈으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공천권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앞으로 공천권을 행사할 것으로 능히 추측될 만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세력의 중심이 갖는 구심력.. 즉 옛날 정치 식으로 말해서 이른바 '보스'의 영향력은 바로 이 공천권에 대한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에 달려 있고 그런 공천에 대한 영향력의 균형이 바뀔 때 세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지역정치의 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 지역정치의 중심이 앞서 말한 공천 영향력의 중심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우선, 이상득 전 부의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속해 있는 영남지역은 두 축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으며, 동시에 이 전 부의장과 박 전 대표가 크게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은 친 이재오계의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친 이재오계 의원들이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포진해 있는 것에서도 이해됩니다. 따라서 친 이재오계와 친박계의 충돌의 이면에는 수도권 의원들과 영남 의원들의 주도권 경쟁적인 측면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윱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이계들이 영남은 어차피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고 충청권은 선진당이 지키고 있는 만큼 서울과 수도권을 확고히 다져야만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부분들을 보면 18대 국회에서 세의 본질과 흐름에 대해 어느 정도 맥이 통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친이계가 흔들리느니 친박계가 영역을 넓히느니 하는 얘기는 왜 나오는 것일까? 우선, 이상득 전 부의장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현 정치권에서 아무래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꼽힙니다. 한나라당내 계파를 굳이 구분하자면 가장 많은 의원들이 포함돼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아마도 친박계를 꼽을 겁니다. 지난해 경선전까지 당의 주류였던데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친박연대 또는 친박 무소속 연대로 당선된 의원들이 대거 한나라당에 복당하면서 세가 커졌습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고 있는 만큼 의원들이나 의원을 하고픈 잠재적 후보들로서는 차기 공천권을 행사할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게 될 겁니다. 박근혜 전 대표 본인이 그것을 인정하고 안하고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18대 국회 초반인 지금은 이 세 축의 영향력이 크기나 비중 그리고 그 범위의 대소와 무관하게 균형을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 균형을 가장 깨고 싶어 하는 세력은 아무래도 세 축 중에 상대적으로 세가 적다고도 할수 있는 친 이재오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듯 합니다. 자꾸 균형 축을 흔들어야 다른 두 축의 구심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종국적으로 약해진 구심력 때문에 떨어져 나오는 의원들을 자신의 세로 편입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친 이재오계는 지난 총선때 당내 공천 파동이 일 때 이상득 전 부의장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면서 친 SD계의 중심축을 흔들었고, 또 공천과정에서 친 박근혜측과의 갈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친박측의 구심력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상득 전 부의장은 2선으로 후퇴하지 않았고 박 전 대표도 스스로 계파 수장으로 전락했다는 일부 언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공천이 잘못됐다'는 소신을 밀어붙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구심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친 이재오계의 구심축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나 현 정권의 실세중 한명인 정두언 의원은 이른바 '형님 퇴진론'의 속편이라고 할수 있는 청와대 개편론을 펼치는 동안 중심축으로서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됐습니다.
지리적인 얘기를 하다가 잠깐 옆 길로 샌 감이 있네요. 이 세 축을 지도상에 그려보면, 이상득 전 부의장은 포항,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구,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서울입니다. 구심력의 영향력 범위는 지리적으로도 적용되는 듯 합니다. 즉 각 지역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부산은 친 이상득계 의원과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섞여 있습니다. 대구와 포항으로부터 일정정도 거리감이 있습니다. TK와는 다른 지역 정서도 있습니다. 따라서 친 이상득계와 친박근혜계의 구심력의 세기에 따라 요동칠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곳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신실세로 평가받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서울 동대문입니다. 서울 수도권의 친 이재오계로서는 홍준표 원내대표를 흔들려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지리적인 측면 뿐 아니라 시간적 요소도 고려해야 합니다. 정권 초기에서 앞으로 중기 후기로 가면서 두 중심축의 영향력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가 구심력 즉 '세'의 변화의 결정 요인이 될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세'에 대해서 얘기 해 봤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정확한 사실에 의해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로서는 정치권에서 나도는 다양한 얘기들을…. 그것도 정확히 입증됐다고 할 수 없는 얘기들을 풀어 놓는다는 부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내 물밑에서 진행되는 변화무쌍한 흐름들이 잠복과 표출을 반복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한나라당의 각 계파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어릴 적 읽었던 '삼국지'가 자꾸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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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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