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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박 반장] 세 (勢) part ①

박병일

입력 : 2008.09.21 09:16|수정 : 2008.10.15 01:47


지난 12일 추경안 처리 불발로 불거졌던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사퇴론이 지난 18일 추경안이 여야가 합의한 대로 통과되면서 수그러들었습니다. 홍 원내대표는 이번 추경안 처리 불발 사태와 그로인한 사퇴 파동을 겪으면서 2킬로그램 이상 살이 빠졌다고 합니다. 얼굴도 눈에 띌 정도로 수척해졌습니다. 맘고생이 무척이나 심했던 모양입니다. 

이번 홍준표 원내대표의 사퇴 논란은 한나라당내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계파 간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희태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홍 원내대표 사태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당내에 계보가 어디 있느냐"는 의미의 발언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바로 이 계파간의 갈등에 대해 여러분과 얘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지난 16일, 홍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던 의원총회에 출입 기자들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지난 12일 추경안 처리 불발 이후 3일간의 추석 연휴를 지낸 뒤 처음으로 홍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놓고 당내 의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으니까요. 이날 아침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홍 원내대표의 유임론이 대세였습니다. 기자들도 재신임 쪽으로 흘러 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상황은 반대로 흘렀습니다. 친이측 의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친 이재오계 의원들이 '홍준표 퇴진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의 초반에 '대안 부재론'이나 '재신임론'이 우세하게 펼쳐졌던데 대한 반발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건 이날은 홍준표 원내대표의 거취를 놓고 계파 간 갈등이 '은근하게' 노출된 날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이정현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과 권영진 의원 등 친 이상득계 의원들은 홍준표 원내대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사퇴에는 반대하는 입장인 반면, 김용태, 진수희, 권택기 의원 등 친 이재오계 의원들은 대 여섯명이 연달아 나와 거칠게 홍 원내대표를 밀어붙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홍 원내대표는 없었습니다. 자유롭게 토론하라며 자리를 비워준 채 원내대표실에서 기자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이날 유임이냐 사퇴냐의 논란이 점점 격해지자 박희태 대표가 급히 수습에 나섰습니다. 추경안 처리까지는 홍 원내대표가 책임지게 하되 그 이후에 다시 재신임 여부를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끝을 냈습니다. 자칫하면 그동안 잠복해있던 계파간 갈등이 다시 불거져 나올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을 겁니다. 홍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소식을 전해들은 뒤 자신을 몰아붙인 친 이재오계 의원들을 겨냥한 듯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세(勢)가 없습니다. 세가 없으니 제대로 일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앞서 장황하게 그간의 경과를 적어놓은 것은 바로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홍 원내대표의 이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자.. 홍 원내대표는 과연 세가 없을까요?  그리고 그 세가 없어서 일을 하기 어려웠던 걸까요? 여하튼 16일 홍 원내대표의 이 말을 기점으로 상황은 재미있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홍 원내대표의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 다음날부터 여야가 긴박하게 움직입니다. 17일 한나라당은 추경안 강행처리를 압박하려는 듯 오후에 예결특위를 단독으로 소집해 놓은채 여야 세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회담을 열었습니다.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서 합의문을 이끌어냈고 그 다음날인 18일 추경안은 여야 합의대로 처리됐습니다. 홍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론도 수그러들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홍 원내대표의 유임을 도운 측은 친박측과 친 SD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야당입니다. 그래서 야당이 "홍준표 일병을 구했다"는 얘기도 나왔던 겁니다. 자 그렇다면, 야당은 왜 홍 원내대표를 구했을까요. 물론 여당의 추경안 강행처리--> 여야 대치 --> 정국 경색 --> 정기국회 파행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부담이 됐을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뭐니뭐니해도 홍 원내대표가 대화 파트너로서 괜찮다(?)는 평가를 했을 겁니다. 친 이재오계가 홍 원내대표를 공격하면서 "맨 날 야당에게 양보만 하고 끌려 다녔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 앞서 말했듯이 친박 측과 친 SD계가 홍 원내대표의 유임을 바랬던 것도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홍 원내대표는 취임초기부터 박근혜 전 대표와 접촉해가며 결과적으로 친박 인사들의 복당의 물꼬를 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내대표단의 진용도 친박과 친이가 균형되게 짜 놓았습니다. 아직 당내 소수파에 머물고 있는 친박측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친박측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기는 어려울 것인 만큼 친이측의 다른 강성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는 것보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겁니다.

친 SD계들의 입장에서 볼 때 홍 원내대표의 이런 스탠스가 맘에 들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당내 친이 대 친박의 갈등이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는 만큼 교체론보다는 유임론을 택했을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홍 원내대표가 말한 "세가 없다"는 말은 틀리다는 겁니다. 친박과 친SD 그리고 야당이 그의 생명을 연장시킨 '세'의 역할을 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가 없다"는 말은 다른 측면에서도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친박계+친SD계+야당은 홍 원내대표를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거나 사랑스러워서 지지한 게 아님이 분명할 겁니다. 다른 대안을 택할 경우 지금 형성돼 있는 힘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을 뿐일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홍 원내대표를 신주류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거침없는 행태와 권력행사 때문에 '홍반장'이라는 별명까지도 얻었지만, 그것은 '원내대표직'에 대한 세력일 뿐 '홍준표' 개인의 세가 아니라는 게 기자들의 대체적 평가입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홍준표 원내대표일 겁니다. 그래서 더욱 그는 앞으로 '원내대표직'에 따르는 '세'가 아닌 '홍준표' 개인을 따르는 '세'를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이번 경험을 깊이 마음속에 새겨야 할 듯 싶습니다. 홍 원내대표 유임론 쪽에 섰던 친SD계 의원들은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홍준표가 예뻐서 그런 게 아니다. 그동안 여러 번 독단적인 행태를 보였던 만큼 차제에 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고 또 분란이 생기는 게 싫을 뿐이다." 많은 의원들이 홍 원내대표의 독단적 성격에 대해 실망한 듯 합니다. 정치가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처럼 돈만 가지고는 세력을 만들 수 없습니다. 때로는 강하면서도 대로는 부드러운 그런 리더십이 있어야 할 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추진력과 포용력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리더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다음 편에서는 한나라당내에 잠복해 있는 '세'의 흐름과 그 본질을 한번 들여다 볼 까 합니다.. 2편에서 뵙겠습니다.

 

[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