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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6개 중앙은행이 함께 나섰을까?

정명원

입력 : 2008.09.19 17:43|수정 : 2010.01.06 14:53

탐욕,공포 그리고 대미불사(大美不死)


의사가 병을 고칠 때 그렇듯이 진단이 정확하면 처방도 정확하고 병도 빨리 낫습니다.

"우리는 지금 백 년만에 볼까말까 한 금융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고 끝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ABC This Week 인터뷰>

기록적인 저금리로 현재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인 월가와 일반 투자자들의 '탐욕'을 키우는 데 누구보다 일조했던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한 말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한 마디 언급없이 얄밉게 현 상황을 진단했지만 핵심을 짚었다는 평가입니다.

국내 언론에서는 인용을 할 때 "백 년만의 금융위기"에 초점을 맞췄지만 15분 동안의 대담 내용에서 강조한 것은 "지금의 위기가 어디까지 갈 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백년만에 볼까말까 한 금융위기를 겪고 있고 시차를 두고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라는 점입니다.

국민의 불안심리를 달래기 위해서이고 실제로는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위기는 기회" 라느니 "미 금융위기로 불확실성이 사라진 면이 있다" 라는 식의 진단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경제를 이끄는 사람들의 이 진단은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손실이 5천억 달러를 넘지 않을 것"이라던 버냉키 미 FRB 의장의 말과는 달리 이미 그 두 배 이상 손실이 생겼고, 연쇄 후폭풍으로 부실 규모를 예측하기도 어려워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진 지금, 미국이나 유럽 정치인이나 관료 가운데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용감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 하루하루 자고나면 요동치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월가의 탐욕(아래 '리만파산의 교훈' 글 참조)으로 만들어 진 부실을 감춘 파생상품이 세계 금융시장의 혈관을 돌며 퍼져있다가 하나 둘씩 터지면서 동시다발적인 '공포'를 형성해 금융시장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진단입니다. 금융시장에 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돈은 있지만 아무도 서로를 믿지 못해 돈이 돌고 있지 않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는 거죠.

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미 FRB는 1930대 대공황 시절로 돌아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프래디 맥, 페니매(아래 '페니매가 뭐길래' 글 참조)를 국유화했고,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AIG에 850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지원했지만 금융시장은 '잠시' 한 숨만 돌렸을 뿐 다시 공포에 빠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세계 6개 주요 중앙은행이 공조해 18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나선 이유도 바로 이 '신뢰'를 회복하려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6개 중앙은행이 나서 주가가 다소 회복됐으니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는 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는 지를 살펴보는 단기 지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3개월 만기 미 국채 이자율인데요.

일반적으로 이 국채 이자율에 이자를 조금 더 붙여서 세계시장에서 은행끼리 돈을 빌려주고 받기때문이죠.

그런데 아래 표에서 본 것처럼 미국이 AIG에 850억 달러 구제금융을 하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 3개월만기

미 국채 이자율은 0.05%로 거의 0% 수준에 떨어졌지만 은행끼리 거래하는 이자율은 무려 64배나 높은 3.2%로 치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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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만기 미 국채 이자율 추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인 크루그만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와 칼럼을 통해

"주식 시장이 아니라 이 채권시장의 신뢰 붕괴"에 중앙은행들이 충격을 받아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는 것은 이런 단기 채권들의 이자율을 조정해 돈을 풀려는 것인데 이미 채권 이자율은 0%에 가까워 금리를 낮춰봐야 효과가 없을 정도로 공황상태이니 직접 돈을 풀겠다는 거죠. 비슷한 상황에서 적극적이지 못한 대처로 초래됐던 일본식 10년 장기불황은 피하겠다는 절박함도 깔려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절박함이 묻어나는 또다른 방안이 바로 Bad Bank 설립 움직임 입니다. 폴슨 재무장관과 버냉키 의장이 미 의회를 열심히 돌면서 설득하고 있는 안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1989년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해 금융위기가 왔을 때 미국에서 설립된 부실채권 정리신탁회사(Resolution Trust Corporation), 우리로 보면 자산관리공사와 비슷한 회사를 또 만들어 최근의 부실채권을 국민 세금으로 일단 떠 앉아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겁니다. '백년 만의 금융위기'를 넘기기 위한 안간힘인 거죠.

문제는 이렇게 돈을 쏟아붇고 난 뒤의 후폭풍입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전 IMF 수석경제학자였던 케네스 로고프가 분석한 바로는 지난해 말 기준 미 정부의 빚이 4조4천억 달러로 미 GDP의 32%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의 금융위기로 4천억 달러 정도의 빚을 더 지게된데다 만약 Bad Bank까지 만들어져 세금이 들어간다면 미국이 금융위기로 진 빚이 1조달러를 넘게 됩니다. 기존 빚과 합치면 거의 6조 달러-너무 천문학적이라 한국 돈으로 계산도 안 되고 실감도 안 나는군요-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급한 불을 끈 뒤 대선후보들의 '감세' 약속과는 달리 긴축 재정과 세금인상, 그리고 소비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국방비 절감을 위해 해외 주둔 미군 병력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분석하더군요.

우리에게 뭘 의미하냐구요? 빚을 얻어서 '소비'를 만끽하던 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이고 이렇게 되면 한국의 대미 직접 수출도, 중국으로 중간재를 팔아 중국인들이 미국에 수출하던 물량도 줄어들게 된다는 거죠. 미국의 Bad Bank 안이 확정돼 만약 '금융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면 한 숨은 돌리겠지만 수출이 나라 경제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우리 나라에게는 또다른 시련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금은 주춤하고 있는 원자재와 원유 가격 급등도 다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이런 금융위기였다면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처럼 진작 금리는 엄청나게 치솟고 통화가치는 급락했을 것이지만 '대미불사'(大美不死)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믿음이 남아있어 지금은 미 채권 이자율이 0%에 가까운 비정상적인 상황이 유지되고 있기는 합니다. 너도나도 '안전자산'이라 믿고 미 채권을 찾기때문에 이자를 거의 주지 않고도 미국이 국채를 팔고 있는 상황인 거죠.

하지만 금 값이 이틀만에 15%나 오르고 9년만에 하루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는 움직임이 신경쓰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대미불사'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금 값이 뛰는 것이라면 이는 상상하기 싫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때문이죠.

글이 길었지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이 Bad Bank를 택할 경우 일단 큰 불은 잡을 수 있을 테지만 그 결과는 3개월 만기 미 국채 이자율과 이에 연동되는 은행간의 이자율을 봐야하고 최근의 금 값 상승과 원유, 원자재 가격의 추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해야 진짜 한 숨을 돌렸다고 봐야할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