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경제

리먼을 방치했던 미 정부, AIG는 왜 구제했나

입력 : 2008.09.17 14:49


지난주 월스트리트에 포진한 주요 금융회사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호소했지만 미국 정부는 끝내 이런 호소를 외면했다.

정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납세자의 혈세를 쏟아 부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158년 전통의 리먼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로부터 이틀이 지난 16일 미국 정부는 AIG에 최대 8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제공하는 구제금융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미국내 1위 보험사인 AIG와 그 자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크레디트라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납세자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왜 이틀만에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게 됐을까.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AIG의 급작스런 파산에 따른 시장 충격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AIG는 거의 모든 금융기관과 직·간접으로 얽혀 거래를 해왔다.

모기지와 기업대출을 포함해 880억 달러의 자산에 보험을 제공하고 있다.

AIG는 특히 4천400억 달러 상당의 채권에 대한 부도위험을 줄일 수 있는 파생상품(신용디폴트스왑프.CDS)을 여타 은행들과 투자기관에 판매한 상태다.

만일 AIG가 급작스럽게 파산할 경우 CDS를 보유한 다른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되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먼의 경우 파산하더라도 손실의 파급이 주주와 종업원, 일부 무담보 채권보유자에게 손실이 국한되며 그 규모도 AIG에 비해서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다음으로 AIG가 일부 투자상품의 부실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처하기는 했지만 보험사의 특성상 우량자산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는 점도 리먼과는 다른 운명을 맞게 된 요인이다.

리먼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원금을 전액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지만 AIG는 이와 달리 순조롭게 원금을 회수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장에서는 정부가 AIG를 파산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특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융시장의 혼돈 양상에도 불구하고 이날 정책금리를 동결한 것은 AIG에 대한 구제금융을 충분히 감안한 결정으로 이해된다.

금융회사에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이 결정된 것은 이달들어서 두번째다.

국책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해 정부가 최대 2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키로 한지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최대 85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키로 한 것이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공기업 성격이 강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개인들이 최대주주로 배당금을 챙겨가는 구조여서 소유형태는 사기업과 다름없다.

다만 모기지시장에 원활하게 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채권발행을 보증한다는 인식이 시장에 팽배해 있기 때문에 이들 회사의 파산을 방치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리먼과 같은 투자은행(IB)은 고수익을 추구하는 위험투자를 특성으로 하기 때문에 시장에 미칠 충격의 규모와 강도라는 요소 이외 정부가 책임을 질 이유는 없는 셈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올해초 베어스턴스의 매각과 리먼의 파산보호 신청, 메릴린치의 매각, 패니메이·프레디맥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AIG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결정 등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베어스턴스를 JP모건체이스에 인수시킬 당시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깊숙히 개입하는 한편 IB에 대해서도 FRB의 대출창구에 문호를 개방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월가에서 신의없는 미꾸라지라는 평가를 받아 '왕따' 취급을 받았던 베어스턴스와 달리 리먼의 경우 월가의 CEO들은 누구나가 '리먼의 친구'라고 자처할 정도로 강한 신뢰를 받았지만 미 정부로부터는 철저히 배척을 받고 몰락의 운명을 맞았다.

이에 자극받은 메릴린치는 고민할 것도 없이 BOA에 무릎을 굽히고 흡수되는 길을 택했다.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처럼 AIG는 막판까지 버티면서 풍성한 구제금융을 받아 냈다.

미국 정부가 사안에 따라 달리 오락가락하는 기준을 적용, 오히려 모럴해저드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특히 AIG에 대한 구제금융은 이날 FOMC가 모럴해저드를 조장하지 않도록 정책금리 인하 압력을 물리치고 금리를 동결한 결정과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