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부터는 초, 중, 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각급 학교의 주요 정보를 그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됩니다. 교육정보공시법이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이 법에 의해 각 학교는 '반드시' 자기 학교에 대한 각종 행·재정적 정보와 함께 진학률이나 취업률, 정원 충원율 등을 공개해야 합니다. 논란이 됐던 학교의 학력 성취 정보도 밝히도록 했습니다.
정부는 이렇게 반드시 공시해야 할 정보의 내용을 세세하게 규정한 시행령을 지난 7월 입법예고했습니다. 그런데 입법예고 기간 동안 조금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애초 공개 내용에 들어있지 않던 각 학교 교원들의 교원노조 가입 현황도 포함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취재 결과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런 조항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해왔지만 일부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와 정치권, 정부 고위층에서 강력한 요구를 받고 있다는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SBS가 이를 단독보도하자 교과부는 '오보'라며 잡아뗐습니다. 이해했습니다. 교과부가 SBS의 보도를 들어 여론이 좋지 않다며 해당 조항을 끝까지 거부해 결과적으로 오보로 만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외부적인 압박이 생각보다 훨씬 거셌나봅니다. 결국 전격적으로 학교별 교원의 노조 가입 현황을 공시해야할 정보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제가 이런 취재 뒷 이야기를 장황하게 밝힌 이유는 과연 이번 조치가 순수하게 교육적인 측면만 고려해 결정된 것인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에 전교조 소속 선생님이 몇분이나 있을까? 궁금한 학부모나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 어제(16일) 거리에서 인터뷰를 하니까 꽤 많은 분들이 그런 의견을 밝혀주시더군요. 특히 한 어머님의 설명이 명쾌해서 원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영향이 굉장히 지대한데 어떤 선생님이 어떤 쪽의 교육관을 갖고 가르치나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010년부터 실시될 학교선택제와 맞물리게 되면 많은 학부모, 학생들이 학교 선택의 주요 요소로 전교조 선생님의 비율을 따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역시 거리에서 만난 많은 학부모들이 그러겠다고 대답했고요. 따라서 학부모, 학생의 알권리라는 측면에서만 볼 때는 공개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앞서 기술한 학부모의 주장에서 우리는 함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교조 소속 교사라면 어떤 특정한 교육관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전교조 선생님들은 학력 신장보다는 인성이나 이념 교육에 치중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전교조의 이념적 지향이 교육 현장의 경쟁 지상주의를 배격하고 좀더 인간다운 교육을 강조하니까 앞서 말한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전교조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는 모두 등한히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전교조 선생님들이 공부를 가르치는데 열심이고 학생들의 실질적 성적 향상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교조 소속이니까 그 선생님은 이러할 것이다 믿는 것이 바로 낙인효과입니다. 전교조 소속 교사가 많은 학교는 그 학교의 실제 능력과 상관없이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 되고 전교조 소속 교사수는 일종의 낙인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낙인을 찍는 것이 교육적으로 온당한 행위일까요?
교육 현장의 갈등 격화도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학습권은 둘다 교육현장의 주요한 권리로써 소통과 협의를 통해 이상적인 교육을 만들어나가는 두 추동력입니다. 그런데 교원 단체 소속을 밝힌다는 것은 견제와 감시라는 기능만 부추길 뿐입니다. 개별 교육 현장에서 스킨 쉽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나가기 보다는 편향적인 인상을 가진 채 서로를 사시로 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교사들 사이의 편가르기 양상도 걱정됩니다. 전교조 소속이냐, 아니냐, 또다른 교원 노조 소속이냐를 놓고 학교 현장에서 대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교원 단체 소속 교원수를 밝히는 것이 학교장에게 자기 학교 교사들의 노조가입을 억제하도록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각종 교원 노조 소속 교사가 많으면 그 학교는 왠지 안정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고 학생들의 수업보다는 교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더 신경쓸 것 같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학교선택제가 시행되면 학부모, 학생들이 그 학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관리자인 학교장들은 교사들의 노조 가입을 억제할 유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한 학교 현장의 갈등도 걱정됩니다.
벌써 저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어제 뉴스 보도에서 이미 각 학교의 전교조 소속 교사 숫자가 정리돼 한나라당 모 의원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른바 '명문'으로 알려진 한 학교의 전교조 교사 수를 공개했습니다.
공개한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 학교의 전교조 소속 교사수가 서울 시내 모든 학교 가운데 가장 많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가 상위권 대학에 많은 졸업생을 진학시키는 이른바 '명문 고교'라는 점에서 앞으로 전개될 제 기사의 논의에 좋은 반증이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뉴스가 보도된 날 밤 해당 학교 교장선생님이 전화하셔서 몹시 거세게 항의를 했습니다. 우선 기사로 나간 전교조 소속 교사수가 49명인데 44명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저는 서울시교육청이 국회에 보고한 상당히 믿을 만한 근거로 기사를 쓴데다 당일 해당 학교 교감 선생님과 통화를 해서 그런 내용을 이미 다 말했지만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44명이라는 숫자도 서울시내 1등이라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또 "굳이 전교조 소속 교사수를 밝혀서 우리 학교를 망치려 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전교조 교사수를 밝히는 것이 학교를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겠죠?그렇다면 12월에 있을 정보공시에 전교조 소속 교사수가 공개되면 절대 안된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겠군요. 그 교장 선생님은 기자인 제게 '소리를 질러댈 정도'로 흥분하셨고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일선 학교가 이 문제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면 앞서 열거한 부작용은 기우가 아닐 것이라는 걱정이 됐습니다.
글이 몹시 장황해졌습니다만 단순히 학부모, 학생의 알권리 충족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 교육현실에 미칠 안좋은 영향이 몹시 많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큰 우려는 최근 정부가 전교조를 옥죄는 일련의 조치를 계속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문제도 결국 전교조 죽이기 차원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의 공약이 전교조 손보기였고, 당선 뒤 첫 조치가 전교조와의 단체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학생, 학부모를 통한 전교조 옥죄기 조치를 펴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혐의를 품기에 충분해보이지 않습니까? 들리는 말로는 전교조를 압박하는 또다른 법률안들도 준비되고 있다죠. 정부가 전교조나 다른 교원 단체를 이상적인 교육 실현을 위한 협의와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기 보다는 싸워 이겨서 격파해야 할 상대로 여긴다면 우리 교육 현장은 대결과 갈등으로 얼룩지면서 더욱 황폐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전교조가 더욱 교육에 발전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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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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