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 청양면 대추리 춘양초등학교 방문기
KTX를 타고 광주 광역시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한 30여분쯤 달리니까 화순읍 팻말이 보인다. 그곳에서 우회전 해서 다시 15분. 좌우로 누렇게 익은 벼가 바람 따라 고개짓을 한다. 전형적인 우리 농촌의 풍광속에서 춘양면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구로 맞아준다. 면 변두리쯤에 춘양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널찍한 운동장과 서울보다 더 깔끔한 교사에 내심 놀랐다. 오른쪽으로는 멋진 신식 건물의 강당도 갖추고 있다. '예전 시골학교가 아니구나.' 그래도 전교생 58명에 한학년이 한반씩인 '시골학교'다.
흔히 시골학교하면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공을 차거나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데 방과 후인데도 운동장이 텅 비어있다. 어디 갔을까 생각하며 학교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각 교실에서는 악기 소리, 책 읽는 소리, 저 멀리에서는 커다란 영어도 들린다. 요즘은 시골학교도 방과후수업에 열심이란다. 아니, 집안 어른들이 다 논일, 밭일로 나가 계시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서 더 오래 돌본다고 한다. 영어도 한다. 하루 1시간씩, 닷새니까 일주일에는 5시간이다. 지금까지는 한국인 강사가 초빙돼 가르쳐왔다. 그런데 지난 1일부터 이 방과후 영어수업에 큰 변화가 생겼다. 원어민 강사가 온 것이다. 미국인 리사 스페인씨다. 통통한 체구에 미소가 예쁜 백인 미국 여성이다. 이 시골에서 어떻게 원어민 강사를 모셨을까? 바로 TaLK 프로그램 덕분이다.
TaLK, Teach and Learn in Korea의 약자로 이명박 정부가 영어공교육 강화 정책의 첫걸음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프로그램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준비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못내 불안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과 영어권 국가에 사는 교포들 가운데 '대통령 장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자원 봉사단을 모은다는 개념이었다. 국내 시골 학교에 파견돼 방과후학교 영어 강의를 해주는 대신 한국어와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공부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프로그램 이름 그대로 한국에서 가르치고, 또 배우는 것이다. 일종의 자원 봉사 개념이라 정부는 양질의 영어 자원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소정의 체류비와 약간의 장학금만 지불하면 되니까-, 영어 교육 소외계층에 집중적으로 서비스를 할 수 있어 일석삼조라고 설명했다. 들어보니 말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기대하는 만큼 충분한 지원자가 있을까, 교육 비전문가가 대부분일텐데 아이들의 교육을 맡길 만한 자질이 될까, 대도시도 아닌 시골생활에 외국인들이 적응할 수 있을까 등등 우려되는 부분이 한두가지 아니다. 일단 첫번째 우려는 지난 6월 해외공관을 통해 모집에 들어가자 4백명 정원에 8백40여명이 지원해 풀릴 수 있었다. 그럼 두번째, 세번째 걱정은? 그래서 직접 수업하는 모습을 보기로 했고 전남 화순까지 찾아간 것이다.
리사 스페인씨는 세 아이의 엄마로 남편이 소년기에 한국에서 자랐단다. 그래서 항상 남편으로부터 한국에서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기억을 들어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던 차에 TaLK 프로그램에 대해 듣고 무조건 지원했다고 한다. 세 아이가 몹시 보고 싶지만 한국인들의 따뜻한 환대와 멋진 시골 풍경, 맛있는 한국 음식에 반해 이곳 생활이 환타스틱~하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은 미국에서도 시골에서 생활해 한국의 대도시보다는 시골이 훨씬 편하고 마음에 끌린다는 설명이다. 현재 화순 읍내에서 홈스테이(우리 말로는 하숙)를 하고 있는데 주인집의 따뜻한 보살핌에 벌써 한가족처럼 친해졌다고 좋아했다. 한국 생활에 만족해서인지 수업은 열의와 활기로 가득했다. 상황극은 물론, 노래와 율동, 게임과 놀이까지, 시골학생들이 영어로 웃고 떠들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겨우 일주일 리사와 함께 공부한 학생들은 벌써 '발음이 좋아졌다', '외국인이 무섭지 않게 됐다', '영어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등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비록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 애정이 있는 선생님이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니까 더 쉽게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한군데 사례를 본 것이지만 TaLK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촘촘하게 짜여졌음을 확인할 수 있어 두, 세번째 우려도 어느 정도 벗을 수 있었다. 영어공교육 강화 정책의 첫단추는 비교적 잘 꿰맸다는 느낌이다. 우선 목표 계층이 좋았다. 사교육은 커녕 공교육에서도 열악한 상황으로 영어 교육의 뒷전에 밀려있었던 지역과 계층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직접 만나 본 학생과 학부모들은 실제 영어 교육의 혜택 자체보다도 자신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노력을 기뻐했다. 자신들의 자녀가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중심 대상으로 돌봐지는 것을 뿌듯해 했고 나도 양질의, 특별한 영어 교육을 받는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걱정이 남아있다. 이번에 온 TaLK 장학생이자 영어강사는 대부분 6개월, 일부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왔다. 기본적으로 돈벌이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배우고 나면 대부분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돌아가거나 국내에서 벌이가 되는 다른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리사 스페인씨와 같이 한국에 대해 특별한 인연과 관심을 가진 외국인이 무한정일까? 한국에 대해 경험하고 공부하고 싶은 해외 교포 학생들이 계속 나올까? 불투명하다. 짧은 순환기간을 고려하면 솔직히 영어강사 공급을 충분하게 유지할 가능성이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는다. 만약 TaLK 지원자 모집이 원활하지 않아 현재의 프로그램이 수년안에 중단된다면 시골학생들에게 더 큰 실망감과 열패감만 안겨줄 수도 있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이번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와 같은 수요, 공급 예측을 좀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외국인의 지원을 끌어들일 요소를 더 발굴하고 개발해야 한다. 나아가 제대로 된 예산을 들여 좀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까지 장기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
시골학교의 어린이들은 아직은 영어가 어색하고 쑥스러운 눈치였다. 그래도 외국인 선생님과 좀더 친해지고 싶고 한마디라도 해보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만약 이들이 초등학교 6년을 외국인 선생님과 하루에 한시간씩 함께 얘기하고 같이 놀고 웃다보면 더이상 영어는 '나와 상관없는 공부'가 아니라 '우리 생활에 유용한 도구로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는 공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기왕에 나선 걸음, 정부는 그런 시골 학생들의 바람을 꺾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기대에 찬 눈망울이 지역 균형 발전의 첫걸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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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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