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말이란게 아무래도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이해하기 쉬운 말을 지향하는지라 인터뷰이에게 쉽게, 더 쉽게 해줄 것을 주문하곤 하지만 고은 선생에게 그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구요.
듣다보니 어느덧 시인의 언사에 매료돼 있었겠지요.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는 고은 선생의 웅웅거리는 톤은 묘하게 시적인 리듬을 탔습니다.
고은 선생은 마치 평상시에도 시로 소통하는 사람같았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제가 후반기의 인생에 대해 여쭤봤을 때 선생은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후기의 생을 '나는 젊었을 때는 이렇게 뜨거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하면서 현자연하거나 성자연하거나 뭔가 커다란 진리를 깨달은 듯하거나 하는 자세, 이런 것이 새삼스럽게 나의 몫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내 앞에 남은 시간들을 이제 이전보다도 조금 더 치열하게 대응해야되겠다고 하는, 어떤 겉잡을 수 없는, 아직 쓰지 않은 지하에 감겨있는 마그마, 이런 것을 지금 예감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치 책의 한 구절을 옮겨놓은 듯 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을 나중에 인터뷰 테잎을 정리하며 다시 들으면서, 어떻게 이런 문장을 말로 구사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온통 시로 살아온 시인 고은의 삶이 떠오르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우주나 내가 태어난 사회에 대해서 언어 하나를 얻기 위해서 거기 중에 상거지로 구걸하는" 고은 선생이지만 언어의 유한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도 선생입니다.
"언어는 언어 자체만이 이 세계에 있는 게 아니고 언어 이전 언어 이후, 그 비언어의 세계가 아주 크지 않습니까. 어떤 진실이나 무엇을 말할 때는 말한 부분만이 말하여 진 것이지 그대로 말이 다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 바로 언어의 절망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언어를 언어해가야지, 언어만을 맹신하는 것도 커다란 오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누수없이 전달하기를 원합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배달사고 없이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경우란 과연 얼마나 될런지요.
말로 살고 말로 죽이는 요즘이야말로 고은 선생이 말하는 '언어의 절망'을 깨달아야 하는 때 같습니다.
경기도 안성 고은 선생 자택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가는데 좀 태워줄 수 없겠냐"고 하셔서 마포까지 승합차로 모시게 됐습니다.
한 시간 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차가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선생이 오토바이 택배기사를 가르켰습니다.
"저 사람들 좀 봐. 몸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우리는 이렇게 유리로 둘러싸였있지만 저 사람들은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아. 저 사람들도 다 마누라도 있고 새끼들도 있겠지. 저런 걸 보면 참 가슴이 아리아리해"
![]() |
[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