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습니다. 공직자가 재산등록하는 대상을 규정해놓은 개정안의 문구가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행안부는 별 문제될 것이 없다며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직자윤리법은 고급 정보 취득이 쉬운 고위 공직자들이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본인의 재산 축적에 활용하거나 '자리'의 힘을 이용해 뒷 돈을 받아 재산을 불려나가는 등의 부패를 막고자 만든 법률입니다.
외국도 비슷한 법률을 두고 있는데요.
나라별로 문화가 조금씩 다른 만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재산 등록 대상으로
1. 본인
2. 배우자
3. 본인의 직계존비속. 단, 등록의무자가 결혼했을 경우엔 그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출가한 여와 외조부모, 외손자녀는 제외.
라고 규정해놨습니다.
이 규정대로라면 기혼 남성 공직자의 경우 친가쪽 재산은 등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가쪽 재산만 등록하면 되는 것이죠.
기혼 여성 공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친정 재산은 등록할 필요가 없고, 시댁 재산만 등록하면 됩니다.
일반적인 재산 관리 관행과 안 맞는 부분이 있죠?
이건 민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호주제'가 폐지됐기 때문입니다.
예전 공직자윤리법은 재산 등록 대상으로
1. 본인
2. 배우자
3. 본인의 직계존비속. 단, 등록의무자가 결혼으로 부 또는 처의 가에 입적한 때엔 그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출가한 여는 제외.
라고 규정해놨는데요.
이 규정에 따르면 기혼 남성 공직자는 친가, 기혼 여성 공직자는 시댁 재산을 등록하면 되죠.
이건 일반적으로 재산 상속이 '부계'를 따라 남성 위주로 이뤄진다는 관행을 고려한 입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입적'이란 개념이 사라져 버리면서 생겨났습니다.
이걸 개정하면서 '결혼으로 입적한 때에는'을 '결혼한 때에는'으로 바꿔버린 거죠.
이 때문에 남성의 경우 '친가' 재산을 등록할 필요가 없게 되자 행안부는 이것이 '단순 조문 변경'에서 생긴 착오라며 '여성이 결혼했을 때'로 조문을 축소해석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왔고, 이번에 새로 개정안을 만들면서 아예 '여성인 등록의무자가 결혼한 때엔 그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인권위와 여성단체는 이것이 '여성'을 가족 구성원으로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며 양성평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것보단 '재산 등록'이란 제도의 실효성이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습니다.
시민단체들 가운데는 이 법률의 입법 취지를 살리려면 양가 모두의 재산을 등록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가족 형태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1자녀 가구'가 늘어나고 있고, 그런만큼 '딸에 대한 상속'도 늘어나고 있기에 여성의 경우는 친정, 남성의 경우 처가도 등록을 하는 게 투명성 확보란 가치를 생각해보면 옳다는 거죠.
행정안전부 담당 공무원의 말은 이렇습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양가 모두를 등록하는 게 맞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대상이 4급 이상이기에 현재 대상자들의 세대에선 '친가'와 '시댁'만 등록해도 충분히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또, 대상을 확대할 경우 공직자들이 갖게 되는 부담감이 엄청날 수 밖에 없다.' 는 겁니다.
행안부에선 직계존비속까지 재산 등록을 의무화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재산 관리 관행을 감안한 대단히 특수한 것이란 말입니다.
찾아보니 외국은 '본인과 배우자, 부양하는 자녀' 정도까지를 대상으로 해놨더군요.
사실 재산 등록 당사자에겐 엄청난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나라에서 자식이 공무원이란 이유로 별도의 수입원이 있는 사람에게 재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 것이냐란 논란도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고지 거부'란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데요.
독립 수입원이 있는 대상자의 경우 수입원을 입증해보이면 재산 등록에서 제외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재산 등록 누락'의 염려가 있죠.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고지 거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행안부는 '고지 거부' 신청을 할 경우 심사를 거치는 것으로 안전 장치를 마련해놨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그렇듯 이 제도 역시 충돌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점을 찾아낸 산물입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면 이 합의점 역시 변해야겠죠.
외국의 사례는 분명 참고해야겠지만, 어차피 한국 사회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수 밖에 없다면 공직자의 투명성을 담보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감안해 현재의 재산 관리 관행을 반영한 엄격한 법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까지도 공직자의 재산 관련 문제가 심심찮게 터져나오니까요.
물론, 실세계(인간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미시 세계가 아니라면)에서 '디지털'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항상 연속적으로 천천히 변화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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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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