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에게 조지 부시 대통령은 '계륵'과 같은 인물이다. 함께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는 참으로 미묘한 존재다.
대선을 불과 2개월여 남겨 놓은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30% 미만이다. 실패한 전쟁에 대한 책임론과 신용위기로 인한 강퍅한 경제가 그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새라 페일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는 결국 '부시 심판론'이 될 것이라는 게 미 정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 진영이 기회 있을 때 마다 매케인을 향해 "그가 당선되면 부시 집권 3기가 될 것"이라고 공세를 펴고 있는 이유다.
이에 대해 매케인측은 '부시와의 차별화'를 대놓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0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경쟁했고, 이후 부시 정부내에서 '이단자'로 꼽혀왔던 그였기에 '차별화'는 큰 무리 없이 유권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그것이 그나마 인기없는 집권여당 후보지만 오바마와 박빙의 승부까지 펼치게 한 동력이었다.
2일 저녁 부시 대통령의 미 공화당 전당대회 화상연설은 매케인-부시 관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허리케인 구스타프 탓이라긴 하지만, 부시의 전대 불참은 다분히 매케인 캠프의 의도적 판단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미 구스타프는 1일 큰 탈 없이 통과한 상황이어서 다음날 전대 일정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기없는 부시를 불참시킬 명분이 생긴 것은 매케인에게 다행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소속당 대선 후보 지명 전대 불참은 지난 1968년 린든 존슨 이래 처음이다.
부시 대통령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존은 스스로 생각하는 독립적인 인사"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에게 `나와는 다른 인물이니 나에게 보내는 차가운 시선을 그에게서는 거둬달라'는 당부인 셈이다. 그의 연설시간은 고작 8분에 불과했다.
그나마 전대 분위기는 부시의 화상 연설에 큰 환호도 없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덴버 민주당 전대에서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간의 팽팽한 긴장이 있었다면, 이번 세인트폴 공화당 전대는 부시와 매케인간의 오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시를 깔아 뭉개고 갈 수만도 없는 것이 매케인의 고민이다.
공화당의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 있는 매케인에게 부시의 지지는 전통적 공화당 지지층 결집의 효과를 내 왔다. 그가 부시와 결별하게 되면 그 표밭은 일순 망가질 수 있다. 최소한 28%에 달하는 부시 지지층 일부의 투표 포기로 이어지면서 선거판의 팽팽한 균형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매케인이 자신의 오랜 친구인 무소속 리버맨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택하지 못하고 골수 보수당원인 페일린을 급하게 선택하게 된 것도 공화당 강경론자들의 입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반론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케이스 마스든 전 세계은행 고문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에 `부시 정부의 경제지표는 견실하다'는 기고문을 통해 지난 2000년 이래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매년 2.2%를 기록했다며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으로 부터 정권을 물려 받은 뒤 총생산 규모를 19% 이상 키워 놨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라크.아프간 전쟁비용도 과거 2차세계 대전이나 한국전 당시 보다 훨씬 낮은 비율이었다며 국방 예산은 1995년 GDP(국내총생산)의 3.8%에서 2006년 4.1%로 0.3% 증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미국 경제의 어려움은 전세계 경제가 총체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라고도 했다.
마스든은 "만일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다면 그의 `사회정의 정책' 추진은 기업과 투자가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며, 경제 전반에 정부의 개입이 늘어나고, 현재의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위배되는 보호주의 정책을 펼 것"이라면서 "만일 그렇게 되면 그 고통은 더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매케인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부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선거의 초점을 `부시 심판론'이 아닌 `매케인 대 오바마'의 구도로 만들어 가는 것 뿐이다.
그러나 오바마측이 그런 구도를 허용할 리 없다. 경제 지표가 나빠지거나, 국제 관계가 조금이라도 삐걱대면 오바마 캠프는 곧바로 `부시 실정'으로 연계시키며 `매케인은 부시의 후계자' 공세를 펼칠 것은 불문가지다. 그렇게 되면 매케인 입장에서 선거는 끝장이다.
단 하나, 만일 부시가 선거때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 준다면, 그래서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어 준다면 '부시 심판론'은 약발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매케인의 한 측근이 NYT에 "제발 조용히 로즈 가든(백악관)에서 물러나 주기를 소망한다"고 말한 것은 캠프 모두의 기도일 것이다.
(뉴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