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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과 폭식의 두 얼굴 라마단, 무슬림은 피곤하다

이민주

입력 : 2008.09.02 21:32|수정 : 2008.10.15 01:27

무슬림 정체성 확인의 시간, 라마단…낮엔 금식·밤엔 포식


이슬람권 명절이자 성스러운 기간인 라마단이 9월 1일 시작됐습니다.

이슬람력 9월을 뜻하는 라마단은 알라가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린 9월을 기념하는 금식월입니다.

윤달 없는 음력인 이슬람력은 양력에 비해 매해 2주 가량 앞으로 당겨지는데 올해는 라마단이 서양력 9월과 정확히 겹치는 바람에 아직도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중동권의 무슬림들은 목마름과 배고픔을 견디기가 예년이 비해 더욱 힘들게 됐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라마단 기간중 무슬림들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먹고 마시는 것이 일체 금지되고 흡연과 부부관계, 심지어는 침삼키는 것 조차 삼가해야 합니다.

다만, 임신부나 노인, 어린이 등 심신이 허약한 사람들은 금식에서 제외되고, 여행자의 경우에는 금식이 여의치 않을 경우 나중으로 미뤄 금식하지 않은 날 만큼 따로 합니다.

평균적으로 대단히 신실한 무슬림들이지만 개중에는 '나이롱' 신자들도 있어 몰래 음식을 먹다 종교경찰에 잡혀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

비무슬림 외국인의 경우에는 해 있는 동안 식당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상관없지만 거리에서 대놓고 먹다가는 경찰의 제지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합니다.

금식은 무슬림의 5대 의무사항(신앙고백, 예배, 헌금, 금식, 성지순례) 가운데 하나인데 1년에 한 달 육체적 욕망을 자제함으로써 알라에 대한 순종을 표시하고 의지력을 키우는 정신적, 육체적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울러 배고픔을 체험함으로써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헤아리고 무슬림으로서의 연대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 부수적으로 금식을 통해 신진대사를 촉진해 의학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동안 해 뜨기 직전에 <수후르>라고 불리는 치즈와 빵, 우유, 콩 요리 등의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해가 지고 나면 양이나 닭, 쇠고기, 쌀, 파스타 등이 주종을 이루는 <이프타르>라는 푸짐한 저녁식사를 친지와 이웃들을 초대한 가운데 밤늦게까지 즐깁니다.

무슬림들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종교의무이자 명절이지만 기업이나 정부, 학교 입장에서는 능률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루종일 굶다 밤늦게까지 포식을 하고 새벽 예배에 참석한 뒤 일터나 학교로 나와 다시 종일 굶으니 몸이 피곤하지 않을 리 없고 집중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회사나 공공기관, 학교들이 아예 라마단 기간동안 퇴근 및 하교시간을 2시간 가량 앞당깁니다. 저 역시 라마단 첫 날인 어제 오후 2시쯤부터 눈 주위가 붉어질 정도로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한 직원들의 얼굴을 보곤 평소보다 이른 3시쯤 귀가시켰습니다.

귀가 차량이 몰려드는 오후 4시부터 해질 무렵까지 아랍권 대부분의 주요 도로는 배고픔에 신경이 예민해진 운전자들이 과속하는 모습이 흔히 목격됩니다.

이 때문에 라마단 기간동안 이슬람권 국가들에서는 예외없이 교통사고가 크게 늘어납니다.

  [편집자주]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종군기자 가운데 한사람인 이민주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스포츠,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오랜 중동지역 취재경험과 연수 경력으로 2001년 아프간전 당시에는 미항모 키티호크 동승취재, 2003년 이라크전 때는 바그다드 현지취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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