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의 두번째 작품이 공개됐습니다. 바로 기숙형 공립고입니다. 1탄이 마에스터고였고 이번 2탄은 기숙형 공립고, 예고돼있는 3탄은 자율형 사립고입니다. 순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장 논란이 적은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해나가고 있습니다.
기숙형 공립고도 취지만 따져보면 참 좋습니다. 현재 읍·면 단위 주소지 학생의 41%가 인근 대도시로 유학을 가는 실정입니다. 또 읍·면 단위 고교의 진학률은 도시 고교 진학률에 한참 못미칠 뿐아니라 기초학력미달 학생의 비율은 훨씬 높습니다. 사실상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죠. 정부가 이런 현실을 타개하겠다며 내놓은 방안이 기숙형 공립고입니다. 읍·면 단위 지역은 가구의 집적도가 매우 떨어지죠. 쉽게 말해 뚝뚝 떨어져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통학거리가 매우 길죠. 등하교에 보통 1시간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에 기숙사가 있는 학교가 들어서면 등하교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 비용을 아낄 수 있겠죠. 또 읍·면 단위에는 물론 사교육 기관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실 학원이 넘쳐나는 곳은 서울 등 대도시 뿐이지 지방 중소도시만 해도 갈 만한 학원이 드물다고 합니다. 읍·면 단위야 말할 나위가 없겠죠. 그런데 학교 기숙사에 생활하면서 방과 후에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여러가지 보충학습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면 역시 참 좋겠죠. 지금까지 설명만 듣고 보면 기숙형 공립고, 왜 이제 나왔나 싶을 만큼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으로 끝일까요?
이번에 기숙형 공립고로 지정된 학교는 농산어촌에 있는 587개 고교 가운데 82개입니다. 농산어촌에 사는 학생의 19% 정도가 기숙사 혜택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나머지는요. 가뜩이나 어려운 교육 현실속에 어렵게 가르치는 500여개 학교와 그곳에서 공부하는 80%의 학생은 더더욱 큰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군요. 학교간 형평성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제기되고요. 어느 학교는 기숙사를 지어주고 우수한 교원을 확보해줘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해주지만 그 외 3배에 달하는 나머지 학교는 뭐죠?
농산어촌 지역은 대부분 비평준화 지역입니다. 학생들이 개별 고교의 입시를 봐서 들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숙형 공립고들은 학생 선발을 시험을 쳐서 할 것입니다. 따라서 좀 거칠게 말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 기숙사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2시간이 걸리든, 3시간이 걸리든 알아서 통학하라는 뜻이죠. 교육 철학을 떠나서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리 썩 공정해보이지 않죠?
전북 지역에 상산고라는 자립형 사립고가 있습니다. '수학의 정석'으로 유명한 홍성대 선생님이 세운 학교죠. 시골에 있습니다만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한 채 속된 말로 빡세게 공부시켜서 명문대에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입니다. 그러다보니 서울에 사는 학생들이 주소지를 옮겨가면서 이 학교로 유학을 옵니다. 24시간 기숙형 입시명문고인 것이죠. 기숙형 공립고가 소위 '성공적'으로 정착돼 좋은 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넣게 되면 이런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요? 다시 말해 80여 개의 입시 명문기관을 만드는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취지는 좋지만 이모저모 따져보니 문제점도 꽤 많군요. 교육과학기술부도 따라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런 우려를 모를 리 없을 것이고 그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겠죠. 하지만 오늘 나온 발표 내용에는 기숙형 공립고가 갖는 장점만 나열됐지 이런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하나도 없군요. 교육과학부 담당자들은 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차차 만들겠다고 합니다. 아니, 문제에 대한 대응책도 없이 대상 학교만 먼저 선정한다는 것이 맞는 수순일까요? 그런 이 학교들은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떤 원칙에 따라 선정된 것이죠? 교과부는 또 졸속 추진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보입니다.
교육은 소수 엘리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책 당국자나 우리 스스로도 실적이나 성과에 얽매이다보면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죠. 아마 몇년 뒤 시골 어느 기숙형 공립고에서 서울대에 몇명을 보냈느니, 어느 명문대에 수석 합격자가 나왔느니 하면서 대대적으로 기사화되고 기숙형 공립고의 성과로 거론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그늘에 수많은 비기숙형 공립고 학생들에 대한 무관심과 소외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 교육 당국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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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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