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정준형 기자입니다.
어젯밤 친분있는 한 취재원과 여의도 국회 앞의 한 허름한 카페에서 모처럼 만나 술을 한잔 했습니다.
어떻게 열심히 일하느냐가 직업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기자들의 경우 취재원들을 만나서 인간적으로 친분관계를 맺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어제 글도 올리고 해서, 오늘은 취재파일에 달리 글을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 어젯밤 술마시다 우연히 옛 정치인 한분을 뵙고,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을 마신 카페는 민주당과 관련된 사람들이 자주 찾던 밥집 겸 술집입니다. 분위기도 오붓하고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SBS 사옥이 여의도에 있을때는 회사 사람들과도 가끔씩 가서 한잔 했던 곳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장한테 물었더니, 요즘은 많이 변해서 민주당 사람들도 자주 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밤 11시쯤 됐을까요. 취재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머리가 허연 노인 한분이 술에 취해 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시더군요. 14대와 15대 국회의원이었던 유명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이후에 공기업 사장도 역임했는데, 꼬장꼬장하게 따지기도 잘하고, 목소리도 커서 야당 의원 시절 자주 TV에도 나왔던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한물은 물론 두물,세물 정도 흘러간 정치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6대 국회 때부터 정당 출입기자로 일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분입니다.
외모로만 봐서는 저 분이 그 분인가 싶을 만큼 알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만은 여전했습니다.
사장에게 물어보니, 과거에 단골이었는데, 지금도 한두달에 한번씩은 와서 과거에 정치를 함께 했던 분들이나 옛 보좌관들과 술을 마시곤 한다고 하더군요.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이겠지요.
요즘도 점심때 여의도를 다니다보면, 지금은 국회의원이 아닌 과거 정치인들을 가끔씩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일 때는 인사도 하곤 하죠. 그 분들이 왜 여의도를 기웃거리는지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거나, 재기를 노린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정치권쪽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여의도에 대한 향수를 못잊어하는 정치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기자로서 봐도, 정치인은 '뱃지'를 놓는 순간, 다시말해 선거에서 떨어진 순간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진다고 봐야합니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정치인들의 경우엔 더합니다. 물론 그 분들의 열렬했던 지지자들은 다르겠죠.
여의도를 향한 향수일까요, 권력에 대한 향수일까요? '당신은 이제 아니야'라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데도 본인만은 '아니야,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한 정치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80년대에 국회의원을 하셨던 분입니다. 이 분의 경우에도 주위 사람은 다 말렸는데
17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곤 몇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가족들은 화병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취재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정치인 한분이 신당창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고 그동안 소식이 뜸했던 분인데, 그 사이에 지역에서 재기를 위한 노력을 해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만든다는 신당이 지역정당이 될 소지가 다분한데다, 이 분도 이미 정치적 힘을 잃은 상태인지라, 소식을 들은 대다수 사람들은 그 분이 헛심만 쓴다고 말하더군요.
그런 말을 해줬던 취재원이나 저도, 똑같이 고개를 가로저었죠. 하지만 본인의 뜻이 완강하다고 합니다.
제 경우 16대 국회때인 2000년에서 2003년까지 4년정도 국회를 출입하다가, 18대 국회에서 다시 국회를 출입하게 됐습니다. 16대때와 지금, 불과 몇 년이나 지났나요? 그런데 그때 여의도를 쥐락펴락 했던 국회의원들과 지금 국회의원들을 비교해보면 70%이상 사람들이 바뀐 것 같습니다.
평소 그렇게 욕을 먹는 국회지만 선거때만 되면 뱃지한번 달아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습니까.
그런 점을 감안하면 사람들이 바뀌는게 당연한 것도 같습니다만, 정치가 참 덧없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제 술집에서 그 정치인을 보면서 잠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치인과 연예인들이이 비슷하겠구나! 한물간 은막의 스타들이 그렇듯이,한물갔다고 평가받는 정치인들 역시 옛 지지자들의 환호를 못잊어하겠구나!
남들은 관심도 없어하는데, 자신은 아직까지도 인기스타인 줄 착각하는 그런 배우들처럼, 자신이 무대에만 서면 지지자들이 환호하며 달려올 줄 착각하며 반전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지금 있는 국회의원들이 덧없는 세월을 보내지않고 의미있는 정치를 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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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90년대 SBS 사회부의 민완기자였던 정준형 기자는 법조팀과 경제부 등을 거쳐, 사회부 사건팀을 이끄는 시경 캡을 역임한 뒤 지금은 정치부 야당팀의 현장반장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때론 거칠면서도 정이 듬뿍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뜨끈뜨끈한 기사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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