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경제

글로벌 침체 '쓰나미'…한국, 물가냐 부양이냐

입력 : 2008.08.16 12:30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오랜 호황 가도를 달려왔던 글로벌 경기가 동반 침체라는 거대한 파도에 직면해 휘청이고 있다.

부동산 경기 추락을 시작으로 미국 경기가 방향타를 잃은데 이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표면화된 유럽과 일본의 경기 후퇴, 올림픽 이후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겹치면서 세계 경제가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난 물가를 비롯해 고용, 성장 등 전 지표에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한국 경제의 앞날에 더욱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정부는 깊어지는 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위해 과연 기존에 나온 감세 조치 외에 전방위 경기 부양이 필요한지, 아니면 심각한 물가 문제를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에 둬야 할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 봇물터진 비관론…미·일·유럽 얼마나 심각한가

글로벌 침체의 진앙지는 이미 1년 이상 금융.부동산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미국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나온 미국의 2분기 주택판매는 연간 환산기준 491만3천채에 그치며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주택압류신청은 7월 27만2천건으로, 1년 전보다 55%나 늘어 '부동산발(發) 경기침체'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고용 부진과 경기부진 속 인플레이션 우려도 심각해 7월 실업률이 5.7%로 4년 만에 최고치였고 소비자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5.6%나 치솟았다.

유럽과 일본은 아예 성장지표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국면으로 내몰렸다. 유럽연합(EU)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가 15일(현지시간) 발표한 2분기 유로화 사용 15개국(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보다 0.2% 줄어 유로화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3일 발표된 일본의 2분기 실질 GDP 역시 전분기보다 0.6% 줄어 지난해 2분기 이래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들 3대 경제권의 공통적 현상은 고용 부진 속에 소비 위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 정부 당국과 시장 모두 이를 되돌리기 힘든 추세적 하락의 징후로 여기고 있어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일 보도에서 월마트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의 전망을 빌려 미국 경제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경제전문가인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전 LA한미은행장)도 지난 14일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경제는 침체를 겪고 있다"면서 "월스트리트 금융기관들의 신용경색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신용경색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한국 경제 지표 온통 '적색'

고유가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는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 우려까지 겹치면서 고용과 물가 등 곳곳에서 적색 경보가 울리고 있다.

7월 고용은 1년 전보다 고작 15만3천 명 늘어 5개월째 20만 명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유가와 원화가치 하락으로 촉발된 물가 우려는 거의 폭발 직전 상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7일 금리 인상을 단행한 뒤 회견에서 "하반기 소비자물가를 5.2%로 전망했으나 그보다 조금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자 물가지수는 7월에 12.5%, 수입물가지수는 50.6%나 치솟아 나란히 10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우며 향후 물가지표가 더욱 악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물가와 고용이 부진해도 뚫고 나갈 활로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간 한국의 성장판 노릇을 해온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투자처인 중국은 '올림픽 이후'에 대한 우려로 이미 '폭풍 전야'의 양상이다.

중국 증시가 지난 15일 0.56% 오른 2,450.61을 기록, 6일 만에 가까스로 반등했지만 지난해 10월 6,124.04를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지수 자체가 반 토막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까지 폭락해 한국 증시에까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림픽 이후 중국이 급격한 경기 하강을 방지하기 위해 성장기조를 유지하되 인플레이션 억제에 주력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올해 9.8%에서 내년 8.1%로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경기부양이냐 물가냐…깊어지는 고민

글로벌 침체라는 '쓰나미'에 맞서기 위해 이미 각국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일본이 내달 발표를 목표로 경기부양 종합대책 검토에 들어갔고 이탈리아는 70억 유로(110억 달러)가 투입되는 서민용 임대주택 10만 채 공급 계획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선 세제 완화를 통한 부동산 경기의 부양 필요성을 강조하는 견해가 속속 등장하고 있고 사상 초유의 유가 환급금 지급과 소득세율 인하 등의 가시적 조치도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이 고용과 소비 부진을 동반하고 있는데다 초고유가로 촉발된 물가 앙등이 겹쳐 각국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780억 달러에 달하는 세금 환급이라는 대책을 내놨지만 7월 경기지표가 일제히 곤두박질치면서 '반짝 효과'에 그쳤다.

아직까지 전방위 부양보다는 고유가와 원화 약세의 후유증인 물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는 이런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럽, 일본이 미국과 더불어 동반 하락한다는 것은 이미 예상됐던 것"이라며 "일단은 물가에 비중을 둬야 하며 갑자기 부양 모드로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유가 환급금 등 재정을 통한 부양을 이미 준비한 상황에서 물가라는 급한 불을 끄는 게 우선이며 정책방향을 성장 쪽으로 수정하려면 빨라도 올해 4분기는 돼야 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유가가 소폭 안정됐다고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볼 상황은 아니나 순수한 비용 인상인 긴축정책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며 "기대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서서히 경기부양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아직까지 경기와 물가 모두에 관심을 둔다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정부는 7월 하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세계 경기 악화를 예상했고 현재 흐름도 예상 범위"라며 "다만 선진국의 경기 악화가 중국이나 중남미 등 신흥시장으로 파급돼 한국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지 여부 등은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유가가 하락하긴 했지만 물가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정부는 물가와 민생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