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출범후 7년을 끌어온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타결이 임박했다.
이달 중순 각료회의 개막 전만 하더라도 "타결이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핵심 쟁점인 농업협상과 비농업 시장접근(NAMA) 분야에서 26일(현지시간) 잠정 타협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잠정 타협안에 대해 인도 등 일부 주요 교역국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설사 농업과 NAMA에서의 잠정 타협이 이뤄지더라도 여타 쟁점들이 남아있어 WTO가 당초 제시했던 '연내 완전 타결'까지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 FTA 위주 통상전략 재검토 필요
국제통상에서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완결된 협상은 지금으로부터 14년전에 마무리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었다. 이를 통해 현재의 국제 무역질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국제경제의 변화에 발맞춰 공산품은 물론, 서비스와 농업, 시장규범 등을 담은 좀 더 개방폭을 넓힌 새로운 통상의 틀을 필요로 했고 이를 반영해 2001년 11월 DDA가 출범했다.
DDA의 출범은 UR 협상 이후 한동안 진행됐던 지역별 통상협력이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표되는 양자간 통상협상이라는 흐름을 다자간 규범으로 되돌리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었으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농산물 수입국과 수출국간 의견대립으로 난항을 거듭했다.
3년간의 지루한 협상을 거쳐 2004년 7월 협상의 기본 골격에 합의가 이뤄졌으나 원래 타결 목표시한이었던 2004년 12월은 훌쩍 넘겼고 2006년 7월에는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협상이 일시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7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중재안을 담은 의장 수정안이 배포되고 이번 제네바 각료회담에서 다수의 주요 교역국들이 합의함에 따라 이제 DDA는 타결 수순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에 나온 잠정 합의안은 관세감축의 품목과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결과물이 아니라 협상의 세부원칙(Modality)들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구체적 이해득실에 대해서는 좀 더 세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민감분야인 농업협상의 경우 타결의 기초격인 자유화 세부원칙(Modaluty)에 대한 의견 접근이 이뤄져 농업 보조금에 대해서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개도국의 요구를 수용해 현행 한도에서 각각 70%, 80%씩을 삭감하기로 했다.
농산물 수입국 그룹(G10)의 일원으로서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수세적 입장을 견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는 잠정 타협안에 따를 경우 특별품목(SP.일반품목보다 관세감축을 덜 할 수 있는 품목)으로 174개, 관세감축 면제품목으로 73개를 확보하게 됐다.
DDA가 타결 쪽으로 방향을 잡음에 따라 우리나라는 통상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그간 우리나라의 대외통상전략은 다자주의와 양자주의의 병행이라는 원칙 하에 이뤄진 것이었으나 참여정부 전반기 DDA 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FTA로 대표되는 양자주의에 전력 투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그간 한.칠레, 한.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한.싱가포르, 한.아세안 FTA가 성사됐고 한.미 FTA 역시 논란끝에 타결했다. 여기에 현재 한.EU와 한.인도, 한.캐나다, 한.멕시코, 한.걸프협력이사회(GCC) FTA가 진행중이며 이 가운데 EU, 인도, 캐나다와의 FTA는 연내 마무리를 위한 막판 줄다리기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DDA가 이번 잠정 타협안을 토대로 연말까지 나머지 쟁점분야 협상을 타결짓고 정식 출범하게 되면 기존의 FTA 일변도 통상전략 대신, DDA 체계와 FTA를 조화시키는 전략 마련이 불가피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잠정 타결안 마련으로, DDA가 중대한 진전을 본 것으로 판단된다"며 "잔여 쟁점의 협상 경과를 본 뒤 개방에 따른 국내 산업의 구체적 대응방안과 대외 통상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 공산품, 해외진출 확대 기반 마련
농산물 분야에서 수세적인 입장과 달리, DDA 비농산물(NAMA) 분야의 핵심인 공산품에서 우리나라는 관세.비관세 장벽의 대폭 감축을 요구해왔다.
이번 잠정 타협안에는 이런 요구들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산품 관세에서 상한 역할을 하게 되는 감축계수를 개도국의 경우 일부 품목의 관세 감축을 면제하는 신축성을 부여하는 대신, 20∼25%선으로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짐으로써 개도국 시장 진출을 지금보다 늘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특정산업의 보호를 목적으로 관세감축 면제대상을 몇몇 산업에 집중시키는 것을 제한하는 신축성 집중화 방지(Anti-concentration) 조항도 일정 수준의 예외를 인정하되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짐에 따라 우리로서는 목표의 100%는 아니더라도 근접하는 성과를 거뒀다.
개도국들은 그간 이 '신축성'을 전략산업화하려는 자국의 특정산업 관련품목에 집중시킴으로써 사실상 특정산업을 DDA의 예외로 삼아 높은 관세장벽을 쌓는 방식으로 보호하려는 협상전술을 구사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NAMA 협상에서 핵심 전략으로 삼아왔던 분야별 자유화 협상도 진전을 거둔 대목이다. 분야별 자유화 협상이란 특정 분야에서 추가 시장개방을 목표로 회원국들이 참여해 해당 분야의 상품 관세를 대폭 감축하기 위해 진행하는 협상을 뜻하는 것으로 당초 미국이 브라질, 인도, 중국 등 거대 신흥 개도국의 시장개방을 목표로 요구해왔던 것이다.
자유화 협상 대상분야는 전기.전자, 자동차 등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들도 포함돼있다.
물론 이번 협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어느 산업, 어느 품목에서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놓고 벌이는 협상의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한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과 EU 등 주요 통상국의 정치 일정으로 연말께부터는 협상이 어려운 상태여서 잠정 합의안 마련은 고무적"이라면서도 "구체적 양허안 마련을 통한 실질적 협상은 이제부터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