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내전 전범 용의자 라도반 카라지치의 13년에 걸친 도피 행각은 최근까지 끝없는 억측과 화제를 쏟아내왔다.
1995년 내전 말기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이 일어난 지 몇개월 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의해 기소된 그는 이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과 서방 정보요원, 세르비아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며 신출귀몰한 은신 생활을 지속해왔다.
도피 초기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몬테네그로 북서부 산악지대에 은신하면서 세르비아 정교회 인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으나 결국 어느 누구도 그의 정확한 은신처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보스니아 사라예보, 베오그라드는 물론 러시아 모스크바와 체코 프라하로 도피했다는 소문도 나돌았으며, 한때 독일의 일부 언론은 그가 북한으로 갔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신문은 보스니아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카라지치가 세계 어디에서도 안전한 피난처를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러나 아마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그곳은 북한이 될 것"이라며 그가 세계 유일의 `안전 피난처'인 북한으로 도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었다.
러시아로 피신했다는 소문은 러시아 정부가 강력히 부인하면서 희미해졌고, 베오그라드 공항을 통해 프라하로 도피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체코 정보기관의 조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언론들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카라지치를 베오그라드 인근 핵전쟁 대피용 벙커에 억류하고 있으며 서방이 코소보 분쟁에 대해 `호의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경우 헤이그 재판소에 그를 넘겨줄 계획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카라지치가 러시아 민족주의 지도자 쉬리노브스키의 소개로 한 리비아 무기상과 접촉, 수백만달러의 `헐값'에 실전투입용 핵무기를 사들이려고 했으며 이를 위해 이탈리아에 계좌를 개설한 뒤 돈을 송금했으나 결국 사기를 당했다는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그는 도피하면서 수많은 화제를 뿌렸는데 한때는 트레이드 마크인 은색 머리칼을 모두 자른 뒤 수도승으로 변장해 정교회 사원에 은신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기도 했고, 베오그라드 한복판의 아파트에 살며 도심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목격자의 신고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의 이런 도피 행각은 할리우드의 블랙 코미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리처드 기어가 출연한 '스프링 브레이크 인 보스니아'(Spring Break in Bosnia)에서 그는 때로는 수도승으로 변장하고, 때로는 군인들의 추적을 피해 경찰차를 타고 도피하며, 심지어 사라예보 도심 한복판, 그의 체포에 혈안이 돼 있는 유엔 관리들 코 앞에서 유유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스크린에 담겨져 화제를 낳았다.
영화의 전개는 보스니아에서 만난 미국 기자들이 500만달러의 현상금에 현혹돼 즉흥적으로 카라지치 추적에 나서고 역시 그를 쫓는 서방 정보기관 요원들과 얽히면서 벌이는 해프닝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당시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맡은 리처드 셰퍼드는 "카라지치를 쫓는 기자들은 결국 아무도 그를 체포하는데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이 대목은 그가 잡히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1-2002년 아내 릴리아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체포되지 않을 것을 자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부인은 이후 도피 중인 남편에게 자수를 권유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는 이후 숨겨놓은 재산을 압류당하지 않기 위한 위장술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가 10년이 넘도록 도피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을 비롯한 측근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를 알고 있는 경찰과 정보기관은 최근 수년간 카라지치의 부인과 아들, 딸은 물론 전직 경호원, 이웃 소유 자택 등에 대한 조사와 수색을 수없이 반복했으며, 결국 그를 숨겨온 측근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그의 은신처가 드러난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