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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美 광우병과 식약청

정명원

입력 : 2008.06.18 08:52|수정 : 2010.01.06 14:58


"美 식품의약품 안전청은(우리나라의 식약청에 해당하는 조직) 없어져야 한다. 불필요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들은 자기 기업의 평판을 신경써야 하고 혹시 고객 건강에 유해한 식품을 팔 경우 집단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잘 식품관리를 할 수 있다."

위 발언 가운데 미국 식약청 자리에 '정부규제'를 넣으면 우리가 요즘에도 정,재계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죠? 이 말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한 말은 아닙니다. 정부의 규제나 간섭이 없이 시장에 맡기면 대부분 잘 해결 될 수 있다는 자유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입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 고기를 가공하고 포장하는 업계의 비리가 심했고 이 문제가 불거지자 프리드먼의 시각에서는 '좌파'로 규정되는 Theodore Roosevelt가 식품의약품 안정청(FDA)을 만들었는데 이 기구에 대한 자유시장 주의자의 공격에서 나온 겁니다.

20세기 초에만 끝난 공방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에만 맡겼더니 시장 실패가 일어나 비리나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며 정부의 개입을 지지하는 학파가 있고 '시장실패'를 정부에 맡겼더니 규제권한을 가진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거나 이익단체의 논리를 대변하는 '정부실패'가 나타나 오히려 시장에만 맡기는 것만 못하더라는 학파가 지금까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뉴욕타임즈에 실린 프린스턴대 크루그만 교수(왼쪽 사진)의 칼럼은 이들의 공방이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일어났을 때 어떤 영향을 줬고 최근 왜 미국에서 자꾸 오염된 시금치나 독성물질이 담긴 땅콩버터, 심지어 살인 토마토 등 식품 안전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상황이 생겼는 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크루그만 교수가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시장실패에 대한 정부 개입을 지지하는 진보 성향의 학자라는 점은 고려해야 겠지만 그동안 크루그만 교수의 주장은 팩트 자체가 틀린 적이 거의 없었고 1998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외환위기가 오기 1년 전 그런 상황을 예측했던 통찰력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귀담아 들을 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크루그만 교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식품관리에 보다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게 됐는데도 불구하고 1994년 미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난 뒤부터는 프리드먼의 후예들이 미 FDA의 예산과 조직을 축소시켜 효과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겁니다. 시금치, 땅콩버터, 토마토 등에서 자꾸 문제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이런 영향이 크다는 거죠.

특히 눈에 띄는 내용은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했을 때 미 농림부의 소극적인 대처 이유입니다.

당시 미 농림부 장관이 Ann Veneman이었는데 식품업계 로비스트 출신이었기때문에 광우병 발병 이후 도축장과 소들에 대한 검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2004년에는 일본이라는 엄청난 수출시장 길이 막힌 칸사스의 한 축산업자가 자발적으로 자기 소들을 전부 검사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는데도 혹시 소비자들이 전 도축장에 그런 요구를 할 까봐 거절했다는 겁니다.

시간이 지난 뒤 결국 검사 대상을 확대하기는 했지만 당시 미국 정부의 이런 행동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쇠고기 수입국들에게 미국의 검역체계를 불신하는 빌미를 줬고 한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외교적 어설픔까지 맞물려 한국에서 쇠고기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크루그만 교수는 주장했습니다.

2003년 미 광우병 발병 당시 상황과 1994년 이후 미 FDA 기능 축소로 인한 식품관리의 허술함의 사례는 어떤 이념-자유시장주의, 사회주의 등-을 맹신해 지나치게 적용할 경우 현실에서는 상당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도 이 사례로 설명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논란입니다.

"기업이 잘 되려면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는 주장이 현실에서는 왜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불량규제를 없애는 것은 물론 기업들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 정치권과 결탁해 쌓아놓은 진입 장벽 성격의 규제를 없애는 적절한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비자 후생을 늘리는 경쟁촉진' 보다는 '기업에 대한 특혜성 규제완화'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사회적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기업 성격은 유지하더라도 어떤 부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것 인지민간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없이 "공기업 민영화는 안 된다. 공기업을 오히려 확대해야한다" 는 주장이 현실에서는 왜 적자를 내는 공기업 임원이 세금으로 엄청난 연봉과 성과급을 받고 직원들은 민간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후생복지 수준을 누리는 '신의 직장' 이 되는 지도 설명이 됩니다.

결국 핵심은 '적절성'(규제의 적절성, 공기업의 적절한 효율화)인데 규제를 싫어하거나 공기업의 방만경영 해소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이념'으로 포장하고 있는 거죠. "규제 완화는 최선" 또는 "공기업 확대는 최선" 을 주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로인한 피해는 경쟁을 통해 좀더 싼 가격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고 자신들이 낸 세금이 보다 잘 쓰이는 권리를 누려야 하는 국민들인데 이들의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해 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