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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드베데프, 푸틴 후계자답게 미국에 쓴소리

입력 : 2008.06.08 08:22


지난달 7일 취임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한 달여 만에 미국을 호되게 비난하고 나서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소리 를 듣고 있다.

지금까지 좀처럼 미국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 않아왔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 참석, 수천 명의 기업인들 앞에서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경제위기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시련의 원인 제공자가 미국이며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외형적인 역할과 실제 능력간 괴리가 바로 현 위기의 주요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 시장이 거대하고 금융 시스템이 신뢰할 만하다고 해도 전 세계 상품 및 금융 시장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세계 정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이날 포럼 기조연설에서 "몇몇 나라들이 다른 나라의 국익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을 생각하고 있다"며 "이는 경제적 이기주의요, 실용적 이해관계에 '정치'가 개입되면서 나타나는 경제적 국수주의"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취임 한 달을 맞이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그동안 그의 정치적 스승인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것과 달리 미국에 대해 직접 공격이나 비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이틀 전인 지난 5일 독일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 배치계획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 등에 우려를 표시하긴 했지만 공격적이며 노골적인 비난은 하지 않았다.

AP통신은 그의 이날 연설에 대해 '미국이 힘에 굶주려 있고 전 세계 문제를 자신들이 좌지우지하려는 의도를 가진 책임감 없는 국가'라는 푸틴 전 대통령의 대미인식을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각에선 이날 연설로 인해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푸틴 전 대통령의 '꼭두각시'로 보는 정치전문가 뿐만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의 인식이 더 확산될 수 있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날 행사에선 사회자가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블라디--'라는 이름을 부르려다 바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로 수정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이를 놓고 아직 국민들 의식 속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이라는 말이 낯설고 '대통령=푸틴'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방증이라는 풀이도 제기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발언에 대해 포럼에 참석한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미 상무장관은 "국제금융 위기에 대한 메드베데프의 언급은 과장돼 있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한차례 침체 국면을 경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방의 필요성, 경제적 국수주의의 위험성, 투명성과 제도의 중요성 등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은 매우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고  기업인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성향으로 분류되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가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면서 전임자인 푸틴 전 대통령과는 다른 온건적 태도를 취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모스크바=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