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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물가냐 성장이냐 '오락가락'

입력 : 2008.06.06 15:44


정부가 올들어 유가 폭탄을 맞아 물가가 치솟으면서 서민생활이 흔들리자 성장 위주의 정책기조에서 한 발 후퇴해 물가 충격 완화에 골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성장 위주의 정책기조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나 정부 당국자들은 정책 기조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펄쩍 뛰고 있다.

정부는 당장은 물가 급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민생을 살펴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성장의 MB노믹스를 실현해야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물가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잡기를 소홀히 할 경우 성장과 물가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물가나 성장 관련 발언이 시장에 엇갈린 신호를 주면서 외환시장이 급등락 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자 수출기업이나 투자자 등 시장참가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 당국 발언 따라 춤추는 외환시장

6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시장에 따르면 정부 당국자의 발언 한마디에 따라 외환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반복되고 있다.

포문은 기획재정부 최중경 차관이 열었다. 지난달 20일 "단기외채 급증에 따른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한 이후 원·달러 환율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26일에는 달러당 1천50원에 육박했다. 단기외채를 규제할 경우 달러 부족현상이 가중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에는 정부 당국의 대규모 개입으로 환율이 급락세로 돌아섰다. 고환율 정책이 고물가를 불렀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가 보유 외환을 대거 풀어 환율을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정부 고위당국자의 물가 중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원.달러 환율은 곤두박질했다. 최 차관이 지난달 30일 "원자재 가격 급등이 중요 고려요소"라고 발언했을 때, 3일 서민생활안정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정부도 물가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을 때 환율은 어김없이 하락했다.

4일 오전 8시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정책조정회 모두 발언을 통해 "물가가 5개월 연속 오르고 실질국민총소득(GNI)이 악화되는 등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의 부담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발언하자 원.달러 환율은 9시 개장 직후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해 장중에 1천10원대까지 밀렸다.

이날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다시 "최근 환율 하락을 심리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구두개입에 나서자 원·달러 환율은 6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마무리하고 상승했다.

◇ 정부 "정책 기조 변화 아니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성장과 물가를 바라보는 정부의 입장이 다소 달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성장 위주의 정책 기조를 바꾼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민생활 태스크포스 회의나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최근 당면현안이 물가이다 보니 관련 발언이 나간 것인데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른 재정부 고위관계자도 "유가가 현안인 만큼 물가 억제에 당분간 주력하겠다는 의사 표현인데 시장이 정부 정책 기조가 완전히 변한 것처럼 해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의 이런 입장은 지난달 30일 최중경 차관의 서울 이코노미스트클럽 주최 초청 조찬강연에서도 드러났다. 최 차관은 이날 20~30분간 진행된 강의에서 정부의 성장 우선 기조를 상징하는 '747' 정책을 설파하는데 거의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최 차관은 "7% 성장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747'은 실현할 수 있는 꿈"이라며 "자원 빈국에서 수출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올드보이의 고집이 아니라 기본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날 강의 주제는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와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였던 만큼 정부의 성장 중심 기본 원칙을 다시 한번 천명했다.

그러나 최 차관은 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지적하는 질문이 나오자 주저 없이 "외환시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서민생활이 어려워진 것이 중요한 고려요소"라고 답변했다. 즉 성장 중심의 정책 기조는 유효하지만 물가 급등이 당면 현안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상완 상무는 "정부가 성장에서 물가 중심으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예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며 "앞으로 외환시장에서 움직임을 좀 더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