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김광현 기자, 중국 대지진 현장을 가다
음료수 한 병을 사려고 들린 동네 가게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저를 보며 한마디 건네십니다.
"어휴 거기(중국) 있다가 여기 계시면 하늘과 땅 차이겠어요!"
그 가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분은 하루종일 SBS만 틀어놓고 계십니다. 그 때문인가요, 가족 이외에 기자인 제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거시는 거의 유일한 분입니다.
코를 찌르던 시신 썩는 냄새, 여진이 언제 발생할 지 몰라 조마조마하던 마음, 호텔 방에 돌아와서 "이곳은 괜찮겠지" 하다가도 잠을 자다 문득 창밖의 건물들이 무사한 지 살펴봤던 기억들이 벌써 가물가물 사라져 갑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이 틀림없나 봅니다. 그러기에 또 힘을 내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 대지진을 취재하기 위해 청두 공항에 내린 것은 14일 밤 11시쯤. 비행기 안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중국인과 한국인 승객이 반반이었는데, 한국인 승객은 거의 전부 각사의 기자들이였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뒤 비자를 받고 떠날 수 있는 첫 비행기였기에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에겐 현장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항공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현장에서 빠져나오려고 난리가 났다는데 그 현장으로 달려가는 기자들. 묘한 흥분감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청두에 도착하면서부터 시련은 시작됐습니다. 청두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검색대에서 6mm 캠코더를 중국 세관에 압수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카메라를 압수당한 것은 SBS와 다른 한 방송사.
우리들이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에 또 다른 방송사 기자들은 재빨리 빠져나가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청두공항 측은 대지진 발생 이후 검색대를 통과하는 거의 모든 고급형 캠코더를 압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뿐 아니라 중국인이나 홍콩인의 캠코더도 보관하고 있더군요. 2시간여 말싸움을 벌이다 할 수 없이 카메라를 빼앗긴 채 검색대를 빠져나왔습니다. (다음 날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동급의 카메라를 대여하기까지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광경은 공항 건물 이곳저곳에 신문지나 이불을 깔고 누워있는 사람들! 여진으로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 집을 버리고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백 명에 달하는 그들은 마치 거리의 노숙자를 방불케 했습니다.
"우리가 지진 현장에 도착했구나!"
어렴풋이 예상했던 것들이 실감나기 시작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도 비슷했습니다. 거리마다 텐트의 물결. 갓길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잠을 청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혼란한 틈을 타 도둑도 들끓기 시작하면서 현지 경찰들에게 두 발씩 지급되던 실탄이 8발로 늘었다고 현지 가이드가 이곳 분위기를 전합니다.
호텔에 도착한 건 새벽 1시 반쯤(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 반). 하지만 전쟁터에서 총을 빼앗긴 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쉽게 잠이 올 리 없습니다. 조금 불안한 마음까지 겹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취재현장에서는 이렇게 예측하지 못한 돌발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날의 힘든 경험은 출장 기간 중 가장 편한 편에 속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설상가상! 취재는 점점 더 꼬여만 갔습니다.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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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광현 기자는 1995년에 SBS에 입사한 경력 14년의 고참 방송기자입니다. 사회부와 경제부, 시사고발프로 '뉴스추적' 등에서 활약한 뒤 현재는 국제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깊고 차분한 취재로 정도를 걷는 방송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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