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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유가, 한국경제에 '폭탄'…3차 오일쇼크?

입력 : 2008.05.22 15:54


기름값에 붙은 큰 불이 세계 경제의 '뇌관'쪽으로 빠르게 다가서면서 '3차 오일쇼크'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22일 국제 석유시장의 척도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가격이 배럴당 133달러까지 치솟고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마저 123달러에 이르면서 뉴욕 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만에 227.49포인트(1.77%) 급락하는 등 충격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석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불을 끌 마땅한 '소화기'가 없어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할 형편이다. 유가 급등은 각종 물가 전반으로 전가되면서 서민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유가가 정부의 예상치를 한참 벗어나면서 경제의 하강은 기정사실화했고 세계적 투자은행들 사이에서는 한국 경제가 올해 4% 초반만 성장해도 다행이라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 '3차 오일쇼크' 설마가 현실로..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다가서던 지난해 하반기 유가가 경제에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우리 경제를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려놨던 1980년 2차 오일쇼크 때의 충격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30년간의 경제변화와 유가 의존도 하락 등을 감안하면 두바이유의 실질실효가격이 2차 오일쇼크 때와 같은 수준이 되려면 배럴당 151.65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6개월전만 해도 '설마'했던 이 가격이 눈앞에 다가왔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1일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은 3.29달러 뛰어오르며 배럴당 123.69달러를 기록했다. 하루만에 배럴당 3달러를 오르내리는 현 추세대로라면 150달러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유가전망기관들도 이런 임계치 돌파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데 동조한다. 이미 3년전 유가가 '대급등'(Super spike) 시대에 돌입할 것을 예상했던 골드만삭스는 지난 5일 보고서에서 앞으로 6∼24개월내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2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충격적 전망을 내놨다.

아흐메드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상이 설립한 석유연구기관 세계 에너지연구센터(CGES)도 5월 보고서에서 올해 북해산 브렌트유 배럴당 평균 전망치를 한 달만에 13.7달러나 올려 113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CGES는 수급문제가 다소 풀려 유가가 약세로 전환하는 상황에서도 연평균 가격이 102.2달러로 여전히 100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 거시경제 전방위 충격

문제는 현재의 한국 경제상황이 한가롭게 유가 급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데 있다.성장률, 국제수지, 물가 등 유가의 직접 영향을 받는 거시지표의 악화가 이미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요 투자은행 중 메릴린치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5.5%에서 4.8%로, 노무라가 4.9%에서 4.0%로 대폭 내려잡았으며 도이체방크와 씨티그룹은 3.9%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는 등 성장률 전망이 하향 일로를 걷고 있다.

물가 충격은 이미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급등세를 보이던 소비자물가가 4월에는 4.1%나 뛰어 3년8개월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고 원재료 물가는 무려 56%나 폭등했다.

원재료 물가는 시차를 두고 자연스럽게 최종 소비재 물가로 전이되는 만큼, 이 같은 흐름은 5월 이후 소비자물가가 더욱 요동칠 것임을 예고한다.

경상수지 역시 올해 들어 3월까지만 적자규모가 51억6천만 달러에 달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불어났지만 서비스 적자를 메울 상품수지조차도 폭등한 원유가격 탓에 흑자를 자신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도 80달러대로 예상했던 전망과 크게 어긋난 유가에 충격을 받는 모습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9일 내놓은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자판매의 둔화, 설비투자추계 부진 등을 근거로 "경제가 정점을 통과해 하강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향후에도 세계경제 둔화,유가 및 교역조건 악화 등에 따라 추가적인 경기위축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지식경제부도 당초 130억 달러였던 무역수지 흑자목표에 대해 "유가 폭등으로 인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제 분석가들은 유가 폭등과 이에 따른 물가 급등, 소비.투자의 위축 으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이 한국 경제에 스태그 플레이션을 가져올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 원 연구위원은 "유가 급등은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와 투자 부진을 가져와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장 큰 전제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수출기업들은 그나마 원화가치 하락이라는 버팀목이 있지만 급등하는 유가와 이에 따른 연쇄효과로 내수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수출기업들은 원화급등에 따라 비용상승 효과를 다소 완화시킬 여지가 있지만 내수기업은 경기가 훨씬 안좋아질테고 이에 따라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성장률 전망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21일 공개된 지난 4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의사록에 따르면 FOMC는 올해 미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0.3%∼1.2%로 지난 1월 제시했던 1.3%∼2%보다 1%포인트나 대폭 하향 조정했다. 미국 경제의 추가 침체 우려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설상가상'이 되고 있다.

◇ 정책금리 인하 어려울 듯

유가급등이 성장률과 경상수지에 큰 주름을 안기고 있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금리 인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4월초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적극 검토하는 입장을 취했으나 이달초 발표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선을 훌쩍 넘어서자 5월 회의에서는 금리를 동결했다.

시장흐름을 좀 더 지켜보다는 태도지만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올라 있는 상태인데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압박이 심각해짐에 따라 6월 회의때도 입장이 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시중유동성은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 금통위가 금리를 낮추기는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이 경제 전반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경우 될 경우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조합에 한은이 끝까지 '나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경기 부양보다는 고유가로 인한 물가급등을 제어하는데 통화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는 기류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