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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은 음주 운전해도 면책?

김요한

입력 : 2008.05.19 18:49|수정 : 2008.10.07 15:38

[김요한 기자의 사건 취재파일] 외교관 음주, 경찰이 손 못 쓰는 이유는 뭘까?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터지는 사건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외교관의 음주운전이죠.

토요일 밤, 주한 남아공 외교관의 아들이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몰았습니다. 사고를 내고는 도주하다 피해 운전자에게 붙잡혀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죠. 여차저차 조사를 받은 이 학생은 결국 외교관 가족이란 이유로 풀려났습니다. 경찰은 음주측정을 요구했지만, 뒤늦게 경찰서를 찾은 외교관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아무리 외교관이라지만.. 술 마신 줄 뻔히 알면서도 풀어주어야 하는 상황. 음주운전에 제법 엄격한 국내법에도, 국민들의 정서법에도 도대체 맞질 않아 보입니다. 이른 아침 출근한 제게 주어진 미션은 그래서.. 이 문제를 자세히 짚어보는 일이었습니다.

궁금했던 점들을 하나씩 취재해 나갔습니다. 내용을 적어 볼테니 찬찬히 한 번 읽어보세요.

@ 외교관 자녀에게도 면책특권이 있나?

'외교관'이란 외국에 주재하면서 자기 나라를 대표해 외교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대사, 공사, 총영사, 부영사, 영사, 참사관, 서기관)을 통칭해 외교관이라 합니다. 외교관의 면책특권이 부여되는 사람은 주한외교관 및 그 가족구성원으로서 한국 국적자가 아닌 사람인데요. 다시 말해 주한 외교관과 결혼한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외교관 가족 모두에게는 면책특권이 주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남아공 참사관 아들에게는 외교관에게 부여되는 면책특권이 있는 거죠.

@ 그래도.. <음주단속>도 아닌 <음주사고>인데?

일반적으로 외교관 차량이 교통사고를 내면 국내 도로교통법에 준해서 처리합니다. 그러나 외교관이 관계된 경우에는 비엔나협약을 따르죠. 때문에 외교관에게는 민사적인 배상 의무는 있지만, 신체불가침 원칙에 따라 형사상 의무는 지지 않습니다. 음주측정 역시 강제집행에 해당하기 때문에, <음주단속>이 아닌 <음주사고>라 하더라도 외교관 신분확인이 된 상태에서는 음주측정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번 그렇게 신분만 확인하고 돌려보내는 거지요. 경찰은 이 비엔나협약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방침을 정해 이행하고 있습니다.

O 외교관에 대한 음주측정 강제실시는 불가함을 감안, 음주측정 협조 요청하되 강제하지 않도록 함.
    - 언어적, 신체적 위협을 통해 음주측정을 강요하지 않도록 유의

경찰 입장에서는 일단 중요한 것이 이 사람이 외교관이 확실한지 <신분확인>을 하는 일인데요. 기억 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2006년 12월 신촌에서 음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대사관 관계자가 9시간 동안 차 문을 잠궈 놓고 요란을 떨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 때는 음주측정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차 문을 잠궈 놓고 <신분확인>을 거부했던 겁니다. 이 경우 경찰은, 사고를 낸 사람에게 면책특권이 부여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신분확인이 되기 전까지는 차량이나 사람을 붙잡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외교관 신분확인이 되고 나면 형사 책임을 물어 강제로 체포, 구금 등을 할 수 없습니다.

@ 형사 처벌 안되면.. 살인, 강간도 상관없나?

그럼 살인이나 강도, 강간 등의 경우에도 형사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겠죠. 그러나 이렇게 사안이 심각한 경우에는 정부차원에서 외교면제 포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남아공 외교관이 살인하고 현행범으로 체포된 경우라면, 우리 외교부에서 남아공 외교부로 "외교관 면책특권 포기"를 요구하게 되고, 이를 남아공 외교부가 받아들이면 국내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외교관들의 불이익을 당하거나, 외교적으로 마찰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비엔나 협약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 입니다.

@ 법적, 도덕적으로 문제 안되나?

이번 사건은 남아공 참사관 아들(S 모. 18)이 17일(토요일) 밤 11시 술을 마신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압구정에서 30살 염 모 씨의 승용차 뒷 범퍼를 들이 받고, 도주하던 중 피해자에게 이태원에서 잡힌 것인데요. S군은 이태원 부근에서 염 씨에게 잡혀 이태원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고, 강남경찰서 교통과로 이첩됐습니다. 하지만 피의자가 S군은 이태원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신상을 밝혔고, 참사관(S 군의 아버지. 주한 남아공 대사관 참사)이 강남서에 직접 와서 자신과 아들의 신분을 확인해 줬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면책특권이 적용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또 참사관은 음주측정은 거부하긴 했으나, 화요일 통역을 데리고 정식으로 와서 조사를 받기로 했으니.. 비엔나 협약상 '조사 자체를 받지 않아도.. 딱히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의를 일으킨 중국 대사 사건 처럼 도덕적으로 비난하긴 조금 애매해 보였습니다.

@ 경찰 대응에는 문제 없었나?

외교부는 지난 2006년 12월 중국 대사 사건이 문제가 되자, 지난 2007년 1월 4일, 경찰과 함께 <주한 외교관 음주단속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은.. 절차에 따라 외교관 신분을 확인 한 뒤에, 확인이 되면 강제하지 않는 수준에서 음주측정 '협조'를 구하도록 되어 있더군요. 당시 사건을 이첩받은 강남서 교통사고조사반 담당 형사는 참사관과 아들의 신분을 확인한 후에, 음주측정을 요구했으나 참사관이 이를 거부했습니다. 대신 "오는 화요일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려 보냈죠. 경찰 대응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 외교관 음주, 무방비?

비엔나 협약 상 구체적인 사안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외교관도 형사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있습니다. 외교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외교면제 포기'를 요구하면 되는데, 이 경우에는 '사안의 중대성'이 기준입니다. 다만 이 중대성이라는 것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상식적인 수준과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해 요구하는 것이죠. 이번 사건, 지난 4월 부산에서 있었던 중국 대사관 관계자의 음주운전의 경우에는, 심각한 인명피해가 있는 사고를 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면책 포기를 요구할만큼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 주요국들은 어떻게 관리하나?

(외교부) 외교부에 확인을 했습니다. 요만 말하자면, 우리나 외국이나 상황은 '똑같다'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었습니다. "신체불가침권이 있기 때문에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음주만 따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음주측정을 강제한다는 얘기는.. 측정기를 입에다 들이대고 불게 한다는 얘기인데, 그건 명백히 강제행위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외교부의 답변이었습니다.

(일본) 직접 일본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현지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역시  대답은 같았습니다. "일본 경찰도 강제로 음주측정을 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외교관들은 음주에서 좀 자유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좀 엄해져서 스스로 자제하고 있다. 몇 년 전에 그런 사고가 있었는데, 대사관 직원이 교통사고를 내서 음주측정을 했더니 혈중알코올 농도가 얼마 나왔었다. 그런데 그 경우도 그 사람 자발적으로 불었던 거고, 강제로 불게 할 수는 없다." "이곳 일본에서는 술냄새가 나거나 명백히 음주가 의심되더라도 강제로 측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보통 대사관에 통보를 한다. 그러면 대사관에서 자체 징계를 하는 식이다. 그래서 그 때 사고를 냈던 그 분도 다른 곳으로 갔다." 주일 대사관 관계자의 대답입니다.

(경찰청) 마지막으로 경찰 측에 물었습니다. 경찰은 지난 해 1월 매뉴얼을 만들면서 외국 사례를 모았는데요, 경찰의 답변 역시 같더군요. "비엔나협약 체결국가들은 어느 나라든지 음주 측정을 강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 호주, 영국 등 주요국이라 하더라도 외교관의 경우에는 음주측정을 거부할 수 있다."

......

결국 외교관은 마음만 먹으면(?) 음주운전을 하고도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외교관이라는 자리가 한 나라를 대표해 일하는 자리이니 상대국의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할 의무도 있지요. 비엔나 협약에도 이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고요. 국제법이 이렇게 여지를 준 것은, 법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적인 책임을 암묵적으로 부여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전 내내 분주히 취재했지만, 결국 오후 회의에서 아이템이 빠졌습니다. 비엔나 협약 체결 국가가 모두 동일하다는 것과, 남아공측의 태도를 도덕적, 도의적으로 크게 비난하기 애매하다는 점, 법적으로 명백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했다는 점 등이 (물론 국민정서법에는 크게 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고려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이 문제.. 궁금하셨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겸손과 존중'이 취재의 좌우명이라는 김요한 기자는 2006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2부 사건팀에서 활약 중입니다. 섬세하고 끈질긴 취재력과 함께 수준급의 '드럼' 연주 실력까지 보도국의 팔방미인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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