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처음 대선 후보로 나서 선거운동에 열중하던 지난 2000년 1월26일.
그는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의 실정 가운데 하나가 고유가라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경쟁자였던 민주당 앨 고어 후보를 겨냥해 "미국의 대통령은 산유국에 유가를 낮추도록 강권해야(jaw-bone) 한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클린턴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 역시 유가를 잡기에 실패한 현 정부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 2월 2일에도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미국을 대표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전화를 걸어 '당신의 파이프 밸브를 열기 바란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공세를 높였다.
부시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던 스콧 맥클레런은 오르는 유가를 클린턴 정부의 '실패한 리더십'의 좋은 예로 들며 부시가 당선되면 정부가 나서 고유가를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거들기도 했다.
16일 사우디 아라비아를 4개월 만에 또 방문한 부시 대통령의 뇌리엔 자신이 2000년 대선 때 수차례 내뱉은 이른바 'jaw-bone 공약'이 맴돌지 않았을 리 없다.
사우디 방문 하루 전인 15일 민주당 에드워드 마키 하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내일 사우디를 방문하면 산유국을 강권해야 한다던 2000년 대선 때 약속을 지키라"며 외면하고 싶은 그의 기억을 되살렸다.
예상대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국왕을 만난 부시 대통령은 침체에 빠진 자국 경제를 압박하는 고유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산유량 증산을 사우디에 요구했지만 "시장의 공급과 수요가 균형잡혔다"는 냉랭한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 1월 사우디를 정상방문했을 때도 부시 대통령은 산유량을 늘리라고 압박을 가했지만 사우디는 "시장이 요구하면 증산하겠으나 지금 공급량은 정상적"이라는 반응을 얻었을 뿐이었다.
미국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이날 사우디를 '압박'(press)했다는 단어로 보도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그는 지금 '강권'은 고사하고 사우디에 압박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 시점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안보 분석가 앤서니 코즈먼의 판세 지적을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16일 "OPEC과 걸프 산유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작아지고 있다"며 "(증산이) 사우디에 무슨 이익이 될 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코즈먼은 "미국은 중동에 평화를 가져오지도 못했고 사우디가 원하는 이라크를 만들지도 못했다"며 "우리는 이란에만 맞춰 문제를 제기했으며 시장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 인도, 떠오르는 아시아의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정부를 깎아내리는 데 쏠쏠한 효과를 본 이른바 'jaw-bone 공약'은 부시의 대선 전략은 유가가 기록을 갈아치울 때마다 입에 오르내리며 부메랑이 돼 부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그가 클린턴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던 2000년 초 당시 국제 유가는 배럴당 27~28달러.
그로부터 8년이 지나 부시 대통령의 재선 임기가 막바지에 다다른 5월 현재 국제 유가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며 130달러에 육박, 2000년의 4배를 넘었다.
여당 후보를 공격하던 대선 후보자의 입장과 정권을 잡은 뒤 직접 부딪혀야 했던 현실 정치 사이의 벽은 8년간 치솟은 유가만큼이나 높았던 셈이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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