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리·닭 모두 '초비상'…횟집·돼지전문점은 반짝 '불티'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논란에 이어 조류인플루엔자(AI)가 서울까지 확산하자 시민들은 육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음식점 등 관련 업계는 손님이 뚝 끊기는 등 우리 사회가 '먹을거리 공황'에 빠져들 조짐이다.
많은 시민들이 광우병이나 AI 걱정이 없는 횟집으로 발길을 돌리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채식주의'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반응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쇠고기·닭·오리 '초토화' = 14일 서울시내 식당가는 광우병 논란과 AI 확산 여파로 쇠고기나 닭고기, 오리고기 등을 찾는 손님이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박모(49)씨는 "광우병 파문이 일고 나서 손님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양천구 신정동에서 소 곱창 전문점을 운영하는 오한영(53)씨는 "방송에서 광우병 문제를 다룬 뒤로 손님이 3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가게 앞에 현수막을 내걸고 안전하다고 홍보할지 아예 업종을 바꿀지 고민중"이라며 "만약 업종을 바꾼다면 광우병이나 AI 걱정이 없는 생선횟집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계탕전문점과 오리전문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관악구 봉천동에서 유황오리집을 운영하는 정모(38.여)는 "손님이 평소의 4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며 "오리고기가 부드러워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찾는데 최근에는 그나마 있던 예약마저 줄줄이 취소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 식당에는 최근 쇠고기 파동과 AI 확산 이후로 직원들이 절반씩 근무하고 있다.
서대문구 홍제2동의 한 오리고기 전문점 주인 김모(51.여)씨는 "해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는데 더 이상 못 해먹겠다. 최근 사흘째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며 "아예 업종을 횟집으로 바꿀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 서소문동에서 고려삼계탕을 운영하는 이모(46.여)씨도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익혀서 먹으면 괜찮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심리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손님들이 잘 안 온다"고 말했다.
한 오리고기전문업체 이희재(39) 차장은 "서울에서 AI가 발생하면서 회사가 도산위기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이 차장은 "매출이 전년 대비 60% 이상 줄었는데 이는 모든 업체가 마찬가지"라며 "손님들의 불안감이 너무 커서 홍보를 아무리 해도 한계가 있다. 너무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 횟집·돼지고기전문점 '불티' = 반면 돼지고기 전문식당이나 생선횟집 등은 반사효과로 몰려드는 손님들 덕분에 성황을 이루고 있으며 정육점에서도 돼지고기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모(46)씨는 "점심시간에 식사하러 오는 손님들이 늘어난 것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손님들은 식사하는 도중에도 광우병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얘기를 화제 삼으면서 '이제는 먹을 것이 생선밖에 없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고 전했다.
잠원동에서 진동횟집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아무래도 소고기 등 육류에 대해 손님들이 불안해하다 보면 회가 조금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서 돼지고기 전문점을 운영하는 강모(47)씨도 "광우병 여파인지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아 잘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회사 회식 등 단체 손님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관악구 봉천동 한 식당주인 손모(50)씨는 "인근 회사 직원들이 점심때 돼지찌개를 먹으러 오는데 요즘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다"며 "이들은 대부분 광우병이나 AI 얘기를 하며 돼지밖에 먹을게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양천구 한 대형마트 내 정육코너에서 근무하는 장삼섭(33) 팀장은 "쇠고기 매출은 20% 정도 줄고 돼지고기는 10% 정도 늘어났다"며 "특히 삼겹살, 목살, 항정살 등 돼지고기를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 시민들 먹을거리 '공황'…'극단반응 자제' 의견도 = 시민들은 잇따른 먹을거리 파동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원 김정기(30)씨는 "광우병과 AI가 동시에 문제시되면서 먹을 게 없어 불안하다"며 "그래도 AI는 익혀서 먹으면 문제없다고 하니 양계농가를 돕는 셈 치고 먹겠지만 문제는 광우병이다. 소비자로서 미국산 쇠고기인지 판별할 수 없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6살과 4살 난 두 딸을 둔 김모(32.여)씨는 "아이들에게 사골을 많이 먹였는데 불안해서 이제는 먹이지 않고 있다"며 "먹을 고기라고는 돼지 뿐인데 돼지고기 값도 덩달아 올라서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박성도(30)씨는 "어제 방배동의 한 대형마트에 갔더니 미국산 스팸을 30% 이상 할인하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싸다고 샀을 텐데 어제는 옆에 있는 꽁치통조림을 샀다"며 "쇠고기가 아니어도 미국에서 완제품으로 들어온 가공육은 왠지 꺼려진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고기류를 못 믿겠다며 아예 이 기회에 '채식주의'로 식단을 바꾸거나 웰빙 식단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대학생 홍신영(26)씨는 "쇠고기 문제와 AI가 연달아 터지니까 굳이 고기를 먹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에는 채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까 하고 알아보는 중이다"고 말했다.
양천구에 사는 정모(47.여)씨는 "요즘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는 아예 고기류는 제외하고 만장일치로 보리밥이나 고등어 등을 먹곤 한다"며 "다들 불안하니까 선호하는 식단도 비슷해지고 채소류 등 웰빙식단으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먹을거리를 둘러싼 언론보도와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박선주(26.여)씨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들은 소설 같고 너무 극단적이다. 과장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는 사람들이 한우라면 한우라고 믿고 먹고 있다. 너무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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