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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는 '신화'보다 '생활'을 택했다

입력 : 2008.05.12 10:50

막판 서방 지원 주효…코소보 상실 불구 EU 가입 선택


세르비아 총선에서 친(親) 서방 정당이 민족주의 세력에 승리하자 외국 언론과 애널리스트들은 일제히 세르비아 유권자들이 '신화'(Myth)보다는 '생활'(Life)을 택했다고 논평했다.

지난 2월17일 코소보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서방 측이 코소보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세르비아 민족과 종교의 성지(聖地)를 빼앗겼지만, 이에 대한 분노와 상실에 대한 집착보다는 유럽연합(EU) 가입을 통한 생활 수준 향상이라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종국에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 예상 밖 개표 결과..배경은

지난 2월 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코소보 독립을 승인하자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거리에는 분노한 시민 수십만명이 쏟아져나왔고 이들은 미국 대사관에 불을 질렀다. 반미, 반서방 감정이 절정에 달한 가운데 코소보 독립을 인정한 EU에 가입할 수 없으며, 세르비아를 지지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급진당(SRS)의 지지도가 치솟았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도 급진당은 34%의 지지율로 친 서방 성향의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을 근소한 차로 앞섰으며, 온건 민족주의자인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총리의 세르비아민주당(DSS)과 제휴, 2000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 축출 후 8년 만에 민족주의 세력의 재집권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민주당이 급진당에 10%포인트 가량 앞선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비공식 개표 결과를 발표한 세르비아 '자유선거와 민주주의 센터'(CESID)는 "매우 놀라운 결과"라고 표현했으며, 한 외교 소식통은 "선거 전 예상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봤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발칸 반도의 안정을 위해 세르비아를 EU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려는 서방 측의 집요한 공세가 막판 선거 판세에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EU는 선거를 열흘 정도 앞둔 지난달 30일 민족주의 세력의 '무효' 주장에도 불구하고 타디치 대통령과 EU 가입 전단계인 안정제휴협정을 체결했다. 또 지난 7일에는 EU 17개 회원국이 세르비아 국민에 비자 면제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

EU는 세르비아가 라도반 카라지치, 라트코 믈라디치 등 보스니아 내전 전범 용의자들을 체포,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인도하기 전에는 세르비아와 안정제휴협정을 맺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총선에서 친 서방 정당을 지원하기 위해 당초의 원칙을 바꿨다.

여기에 총선 수일 전 이탈리아의 자동차 메이커인 피아트가 세르비아 현지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것도 최소한 2-3% 가량의 표를 친 서방 정당 쪽에 끌어들였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토미슬라브 니콜리치 급진당 총재는 30%에 달하는 실업률과 낙후된 경제를 지적하며, 친 서방 정권의 경제적 실정을 비난했지만 유권자들은 정작 정치적 고립과 경제적 침체에 대한 대안은 러시아가 아니라 EU라고 판단했다.

◇ 험난한 제휴 협상 예고

이 같은 예상 밖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연합이 새 정부를 구성하기 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전체 250석 가운데 103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민주당과 G-17 플러스당 연합은 13석을 얻게 될 자유민주당(LDP)과 제휴한다고 해도 116석에 불과, 과반에 미달된다.

또 민족주의 세력의 경우 급진당(77석)과 세르비아민주당(30석)이 연정 파트너가 된다고 해도 107석 밖에는 안되기 때문에 역시 다른 정당과의 제휴가 필요하다.

새 정부 구성의 열쇠는 결국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사회당(SPS)이 쥐게 됐다. 밀로셰비치 정권 이후 최대의 성적표를 거머쥔 사회당은 개표 결과 7.9%의 득표율로 최소한 20석을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회당은 언뜻 밀로셰비치가 소속됐던 정당인 만큼 민족주의 정당들과 제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급진당과 사회당의 사이가 좋지 않은데다 오히려 사회당-민주당 지도부 간 밀약설도 나돌고 있어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연정 협상은 현재로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안개 정국이다.

만약 사회당이 급진당 및 세르비아민주당과 제휴할 경우 민주당은 선거에서 이기고도 정권 창출에 실패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치러진 총선에서는 급진당이 제1당의 위치에 오르고도 연정 파트너를 찾지 못해 민주당-세르비아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준 적이 있다.

타디치 대통령은 "세르비아를 1990년대로 회귀시키려는 세력이 선거에 대한 국민적 의지를 뒤집으려 시도할 것이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 후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준비가 됐다. 협상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